한국은행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25%로 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코로나 경제 충격이 발생하기 전인 2020년 초 수준으로 돌아갔다. 기준금리의 원상 회복은 경제가 코로나 충격을 벗어나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 가계부채의 연쇄 부도, 한계기업의 파산을 유발해 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치닫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2020년 3월 한국은행은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자 기준금리를 연 0.75%로 낮추고 같은 해 5월 다시 사상 최저인 0.5%로 내렸다. 코로나의 경제 충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문제는 부작용으로 물가가 불안하고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연 0.75%로 올렸다. 11월 또 1.0%로 올린 후 지난 1월 다시 1.25%로 올렸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물가와 가계부채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기준금리를 계속 올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는 연간 2.5% 상승해 2011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0%를 크게 웃돌았다. 가계부채는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계부채 잔액은 총 1845조원이었다. 올 상반기 19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 요인은 저금리 대출을 이용한 부동산, 주식 등 자산 매입이었다.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60%에 이른다. 이에 따라 자산시장이 거품으로 들뜨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한국부동산원 실거래가 지수를 기준으로 93.9%나 올랐다. 주식 가격도 빠른 속도로 올라 정부 출범 당시 2270선이었던 종합주가지수가 지난해 7월 3300선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정책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가계부채를 줄일 것인가? 한마디로 석유로 불을 끄는 격이다. 역효과가 커 거꾸로 경제위기의 뇌관을 터뜨릴 가능성이 크다. 우선 기준금리 인상의 물가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물가 상승이 경기 침체를 동반하고 있다. 통화 공급의 증가로 인해 물가가 오르고 있으나 코로나 사태가 계속 이어져 경기 침체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사실상 경제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악순환을 형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물가 안정 대신 경기 침체가 악화하고 기준금리를 낮추면 경기 회복 대신 물가 불안이 확산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로 큰 문제는 금융시장의 불안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가계부채 증가세는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으나 부도 위험이 커진다. 기준금리가 0.5%에서 1.25%로 올라 가계부채의 연간 이자 부담액이 10조원 이상 늘어난다. 향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경우 가계부채는 연쇄 부도의 위기로 치닫을 수 있는 구조다. 가계부채의 연쇄 부도는 저소득층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소득 하위 20%는 가처분소득의 60%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 자영업의 연쇄 부도도 뒤따를 전망이다. 전체 고용의 25%를 차지하는 자영업이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빈사 상태다. 자영업자 부채가 900조원에 육박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직격탄을 맞는다. 일반 기업들도 부도 위험이 높아진다.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고 해외 자본이 유출되면 경제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이미 증권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3300선을 넘었던 종합주가지수가 2600선까지 떨어졌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던 부동산 시장도 힘이 빠졌다. 자칫하면 경제가 실물과 금융이 함께 무너지는 퍼펙트 스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세계경제가 위험하다.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 상승해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물가 안정을 위해 매달 1200억 달러 규모의 돈을 푸는 양적완화 조치를 3월까지 끝내고 올해 기준금리를 3-4차례 올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해외 자본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미국발 금융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우리 경제는 속수무책으로 퍼펙트 스톰의 회오리에 휩싸일 수 있다. 1994년 미국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3.0%에서 6.0%로 올린 바 있다. 해외 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됨에 따라 1995년 남미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남미 외환위기의 여파가 계속되면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해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미국은 2004년 경기 부양을 위해 1.0%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2006년 물가 불안을 막기 위해 5.25%로 올렸다. 곧바로 주택금융시장이 연쇄 부도의 소용돌이에 빠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다. 2008년 월(Wall)가가 무너지고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가 발생해 세계경제가 다시 타격을 받았다.
미래 산업 발전과 경제 혁신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코로나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필요하다. 가계부채의 증가를 막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 인상 정책 기조는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 등 주요국들이 통화긴축 정책을 펴고 있어 이에 역행할 경우 외국 자본이 유출해 금융위기를 재촉할 수 있다. 코로나 위기는 재정정책을 효과적으로 펴 대응해야 한다. 무모한 재정 지원은 국가부채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코로나 사태의 경제적 피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르게 살리는 지원 대책을 펴 정책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경제가 퍼펙트 스톰의 압박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려면 기업과 산업 발전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기업의 창업과 투자를 촉진해 시중자금이 산업 발전으로 흐르면 물가 상승 압박이 감소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아 일자리를 만들며 소득을 증가시키는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 더 나아가 부채 상환 능력이 커져 가계와 기업이 부도위기를 피하고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려면 4차 산업혁명과 혁신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 미래 핵심 기술의 선점 여부에 따라 경제의 명운이 달라진다. 미국과 중국은 미래 기술과 산업 발전을 놓고 치열한 전쟁 중이다. 우리나라는 미·중 간 기술과 경제 전쟁의 포로 상태다. 우리 경제가 4차 산업혁명과 혁신에 뒤처지면 양국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희생의 위기를 맞는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을 선점해 양국이 압박 대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 핵무기나 마찬가지다. 먼저 개발해 보유하는 나라가 경제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조기 달성과 경제의 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규제를 혁파해 통제 일변도인 산업정책에서 탈피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제고해 기업 경영의 자율성도 높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가 시장 기능을 대신하여 재정 지출로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강화하는 소득주도성장을 주요 정책으로 폈다. 한국은행도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 금리를 낮추고 통화 공급을 늘렸다. 결과는 경제의 역주행이다. 경쟁국들에 비해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자산시장이 거품으로 들떴다. 국가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국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용 창출 능력을 상실해 실업난이 악화하고 빈부 격차가 커져 서민경제가 위기에 처했다. 다음 달에 우리나라는 20대 대통령을 선출한다. 코로나19 사태를 조기에 극복하고 위기에 처한 경제를 다시 살리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념과 정치 논리로 경제정책을 펴 경제의 추락을 유발하고 경제 전쟁의 희생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선거가 불안하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갖가지 비리와 의혹을 놓고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하다. 여기에 경제정책을 선거 수단으로 삼는 포퓰리즘이 난무한다.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경쟁을 한다. 경제를 올바르게 살리는 새 정부의 출범이 절실하다.
이필상 필자 약력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고려대 총장 △제7대 유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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