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美中 사이에서 중심 못잡는 우리 외교와 반기문의 어정쩡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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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2-0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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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비행기 추락 사고로 임기 중 사망한 2대 유엔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셀드는 유엔의 임무가 인류를 천당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 사무총장 직책을 맡을 때 전임자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라는 경고를 받았다. 지구상에 산적한 복잡한 문제를 푸는데 있어 193개 회원국의 다양한 이해 관계에 얽매여야 하고, 또한 모든 사안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5개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총장의 영문 표기 Secretary General의 약자 SG를 Scape Goat, 즉 희생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어려운 직책을 10년 동안 두 번에 걸쳐 수행한 반기문 전 사무총장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사실 반 총장이 2016년 말 임기를 마치고 그는 곧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뛰어 들어 정치의 한 복판에 섰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 평가를 제대로 할 기회가 없었다. 한국인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반 총장의 모습은 준비 없이 대선에 뛰어 들어 좌충우돌하다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중도 하차한 것이다. 그 후 5년 간 한국 사회는 그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잊혀진 과거의 인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2월 그는 ‘반기문 결단의 시간들’이라는 한국어 자서전 출판을 통해 10년간 유엔 수장으로서 자신의 활동상을 조명하고 있다. 작년 6월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된 ‘Resolved’란 책을 번역하고 거기에 자신의 2017년 대선 출마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여 출판했다. 어린 시절 충주 음성의 시골 소년이 국제 무대를 주름잡는 외교관의 꿈을 키워온 때로 부터 대통령 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거쳐 지구상 가장 높은 외교직인 유엔 사무총장에 이르기 까지의 전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역시 자서전이기 때문에 반 총장은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수단, 코소보, 콩고 내전 등 난마처럼 얽힌 지구상의 수많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몸을 던져 동분서주했고 난민, 기아 문제 등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전 세계의 관심과 도움을 구해 많은 성과를 이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임기 막판 파리 기후 협상을 극적으로 이끌어내 지구 온난화를 늦추었으며 지구촌의 후손 세대를 배려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즉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를 합의해 낸 점도 큰 치적으로 내세운다. 에볼라 등 지구적 질병 퇴치를 위해서도 노력했으며 여성과 인권 문제에 있어 유엔의 역할을 크게 강화했음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유엔의 비능률과 관료화를 해결하기 위한 대담한 조직 개편과 개혁도 소개한다.

이러한 호의적인 평가는 그 동안 국제 여론 및 언론의 인색한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 특히 미국 등 서방 언론은 반 총장 임기 내내 그의 무기력함과 무성과를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중요한 문제에 있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을 들어 그를 ‘Invisible Man,’ 즉 ‘보이지 않는 사람,’ 혹은 ‘Nowhere Man,’ ‘아무데에도 없는 사람’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전임 코피 아난 총장과 비교해 카리스마와 소통 능력이 결여된 점을 비난하기도 했다.

임기 한창인 2013년 뉴욕타임즈는 ‘Where Are You, Ban Ki Moon?,’ ‘반 총장은 어디 있는가?’라는 신랄한 비판 컬럼을 게제했다. 여기서 유엔이 끔찍한 반인륜적인 시리아 내전 사태에 손을 놓고 있는 점을 들어 그를 통렬하게 비난했다. 그 전에 있었던 코펜하겐 기후 협약의 실패, 스리랑카 내전 사태 방치, 유엔 평화유지군의 의한 하이티에서의 콜레라 확산 등 수 많은 실정을 들어가며 그를 공격했다. 아울러 그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고 연설할 때도 원고에 의존하는 등 소통 능력의 문제도 제기했다.

그러나 반 총장에 대한 이러한 서방 언론의 비판 기사를 보면 한 가지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시작은 주로 반 총장의 공격으로 시작되지만 후반에 가면 항상 유엔 사무총장 직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한다. 즉 반 총장의 문제는 반 총장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유엔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라는 말처럼 모든 회원국들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협상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반 총장 아니라 누가 와도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재임 중 문제가 되었던 시리아 내전 사태의 경우 유엔이 행동을 취하려 해도 안보리 상임 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국이 강력히 반대해 무산된 점을 상기시킨다. 초강대국 상임 이사국인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다 관례인 두 번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출된 부루토스 갈리 전임 사무총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직의 그러한 태생적인 한계를 볼 때 반 총장의 실적을 실패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테러 등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구 곳곳 분쟁 지역을 빠짐없이 다니며 중재의 노력을 기울인 점이나 놀랄만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쉬지않고 노력한 점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 같다. 카리스마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따지고 보면 반 총장의 동양적인 겸손함과 완곡함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10년 동안 동분서주하며 닦아놓은 전세계 인적 네트워크와 국제 문제에 대한 경험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한국 외교의 현실을 볼 때 이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 5년 전 섣부르게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퇴장한 그의 전력 때문에 한국을 위해 지금 그가 국제 외교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실이란 생각이 든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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