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일개 비서관이 국무총리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에 인사권과 정책결정권 등이 집중되고, 일개 비서관이나 행정관이 장난을 칠 틈새가 많기 때문이다.
최종 서명과 결재는 대통령이 하지만 실질적인 검토는 실무진이 한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가 결정하면 국무회의가 수행하는 소위 '청와대 정부'가 이어져 왔다. 청와대의 영향력은 정부부처와 공기업을 넘어 사기업 인사와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통령을 근접거리에서 수행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행정관 등은 국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어떤 과정을 거쳐 등용되는지도 불투명하다. 그들이 무절제하게 행사하는 권한은 결국 부메랑이 돼 역대 '퇴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통령 의지와 능력과 상관없이 청와대 참모진이 장난칠 수 있는 지금의 구조가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불행한 대통령'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6일 본지 대선자문단·대한민국지식중심(이사장 전계완)·한국청년거버넌스(대표 권혁진) 공동 기획에 참여한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靑, 공기업 실·국장 인사 개입설···어제오늘 일 아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는 "모 공기업 산하에 지인이 있는데, 청와대가 이사진 구성에도 관여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대통령이나 수석보다는 청와대 비서진이나 행정관 등이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도 "청와대는 인사검증과 인력배치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이기에 정부산하 공기업의 실국장과 각종 기관장 등의 배치에 인사권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공감을 나타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역시 "정부 출범 초기에는 국무총리는 얼굴마담이고,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은 거의 다 청와대가 임명한다"면서 "청와대에 파견 나왔던 공무원들이 부처로 돌아가면 바로 승진을 하기에 청와대를 중심으로 권력이 돌아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대통령이 가진 인사권을 총리와 소관 부처 장관에게 나눠줘야 해결된다. 그러나 현 문재인 정부 역시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표방하며 더불어민주당의 거물급 정치인 이낙연‧정세균 전 의원을 총리로 내세웠지만, 그들이 실제 국정에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임 교수는 "책임총리제의 핵심은 인사권이다. 과연 이낙연·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인사제청권을 제대로 행사했는가"라며 "추미애·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파동이 있었을 때 못 자르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채 교수 역시 "이 전 총리가 '조국 인선'을 반대했지만, 결국 청와대가 임명해 '조국 사태'를 키운 것 자체가 책임총리제가 무력화돼 작동되지 않은 상징적 예"라고 거들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책임 총리를 하려면 이원집정부제 개헌부터 해야 했다"면서 "권력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말로만 준다고 해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권력구조 개헌이 선행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靑 권력분산 근본대책은 첫째도 둘째도 개헌"
결국 전문가들은 현재 지나치게 거대한 청와대 권력 개편을 위해선 개헌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개헌이 쉽지 않기에,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충고다.
임 교수는 "각 후보들이 공약에 청와대 권력분산을 구속력 있게 담아야 한다"며 "단순히 하겠다는 것이 아닌, 취임 후 3개월 혹은 6개월 안에 청와대 조직개편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바꾸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서 대통령 중심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의원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로 가든 구조적으로 국무총리가 국회에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가야 책임총리제가 된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정부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장관직을 만들고) 하는데, 청와대는 자체 규칙으로 비서관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며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국무조정실을 강화하고, 소관부처 장관에게 인사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신 교수 역시 "일부 수석을 폐지한다고 현재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이 없어지진 않는다"면서 "일부 기업의 기획조정실이 문제가 되니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꾸는 일과 비슷한 일이 (청와대에서도) 생길 것"이라고 했다. 제도적으로 대통령 권력을 줄이지 않는 이상 청와대 참모들의 '호가호위'를 막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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