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100℃] 금메달보다 값진 김민석의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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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2-02-0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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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를 치켜세우는 김민석 [사진=연합뉴스]

빙판 위. 김민석이 누이스 뒤에 섰다. 세계 기록(1분40초17) 보유자 뒤에다. 덩치도, 실력도 누이스가 한수 위다.

준비, 땅. 출발 신호와 함께 중계를 맡은 방송 3사는 굉음을 질렀다. "달려라."

소란스러움에도 김민석의 스케이트 날은 침착했다. 속력을 서서히 올렸다. 

300m 구간에서 누이스는 2위, 김민석은 5위였다. 700m부터는 왜 별명이 '빙속 괴물'인지를 설명했다. 김민석이 3위로 치고 올라왔다. 누이스는 그대로 2위였다. 1100m 구간에서도 김민석은 3위, 누이스는 2위를 유지했다.

1500m 결승선. 누이스가 먼저 통과했다. 1분43초21. 올림픽 신기록이다. 김민석은 1초03 뒤인 1분44초24에 당도했다.

김민석이 무릎에 손을 얹었다. 그의 등에 누이스의 손이 올려졌다. "잘했다. 고생했다"며 토닥였다.

장외로 나간 김민석의 눈은 빙판을 향했다. 세계 순위 1~4위가 아직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1위 맨티아, 2위 닝중옌, 3위 하우, 4위 요한손이 김민석의 기록을 넘지 못했다. 작은 김민석이 미국, 중국, 캐나다, 노르웨이를 넘는 순간이다.

방송 3사가 또다시 굉음을 질렀다. "동메달." 김민석은 옅은 미소와 함께 태극기를 둘렀다. 베이징 포디움에 한국 선수가 처음으로 올랐다. 덩치 큰 네덜란드 두 선수와 작은 한국인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간이 시상식이라 동메달 대신 빙둔둔 인형을 받았다. 2018 평창에 이은 두 번째 동메달이다. 포디움에서 내려온 그는 전날(2월 7일) 밤 불의의 사건을 언급했다. "불의의 사건이 있어서 저라도 힘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날 밤 쇼트트랙은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뭘 먹지도 않았는데 체기가 올라왔다. 제대로 얹혔다. 준준결승에서는 한 선수가 큰 부상을 당했다. 준결승에서는 결승 진출을 앞둔 두 선수가 실격됐다. 중국 선수들이 빈자리를 메우더니 금·은메달을 강탈해 갔다.

누리꾼은 분개했고, 선수단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사건을 도마 위에 올리겠다면서다. 그래도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딱 하루 뒤. 김민석의 동메달은 소화제가 됐다. 얹혔던 꽉 막힘이 풀렸다. 11바늘을 꿰맨 박장혁은 붕대를 감고 훈련에 복귀했다. 한국 선수들은 개운한 듯 표정이 밝아졌다. 스케이트 끈을 조였고, 맑은 땀을 흘렸다. 서로를 위로했고, 응원했다. 김민석의 동메달로 한국의 올림픽이 다시 시작됐다.

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에는 '모든 인간은 어떠한 차별 없이 올림픽 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제1장(올림픽 운동) 2조(IOC의 사명과 역할)에는 '올림픽대회가 개최도시와 개최국에 긍정적 유산을 남기도록 장려한다'고 적혀 있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메달의 색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잠시 출고됐다가 삭제된 일기 같은 한 매체의 기사처럼 그냥 줘버리면 편하다.

중국은 유산으로 금메달과 순위를 남길 것이다. 우리는 더 값진 동메달을 얻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김민석은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하늘로 먼저 떠난 자신의 반려견을 떠올리면서다.

"모모가 하늘에서 '왈왈' 짖으며 응원해줘서 동메달을 딴 것 같아요."

금메달 이상의 감동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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