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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천석꾼 살림을 기울게 하는 요리가 두 가지 있다고 전해진다. 첫째가 토하(土蝦‧민물새우) 눈알젓이다. 토하도 작은데 그 눈알로 젓을 담자면 성인 두 명이 하루 종일 잡아도 한 종지를 채우기 어렵다. 두 번째는 굴비 껍질 쌈이다. 굴비도 비싼데 굴비 한 마리에서 좌우 껍질을 벗기면 딱 두 장 나온다. 그래서 이 맛에 빠져들면 천석꾼 살림이 기운다는 것이다. 아마 말쟁이들이 만들어낸 말이리라.
담양은 예로부터 음식 관광을 하러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에는 죽녹원 삼지내 등 슬로시티에서 눈과 입을 호사시키는 미식(美食) 관광이 붐을 이룬다. 식도락 관광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담양군은 웰빙 관광객을 위한 ‘담양 10경(景)’에 이어 ‘담양 10미(味)’를 선정했다.
담양 10경은 '가마골 용소' '추월산' '금성산성' '병풍산' '삼인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죽녹원' '용흥사 계곡' '관방제림' '일동삼승지(一洞三勝地·소쇄원 식영정 한벽당)'. 일동삼승지는 한 마을에 경치가 뛰어난 곳이 셋이나 있다는 뜻이다.
담양군이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담양 10미는 '한우떡갈비' '대통밥' '죽순요리' '돼지숯불갈비' '국수' '창평국밥·암뽕순대' '한우생고기' '메기찜·탕' '한과·쌀엿' '담양한정식'.
<고재구 전통쌀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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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구 전통쌀엿의 두 형제가 엿을 늘였다 접으며 바람을 넣는 쌔기기를 하고 있다. [사진=담양군 제공]
고재구 전통쌀엿에 들어가는 쌀 엿기름 생강 참깨는 모두 국산이다. 생강은 알싸한 맛, 참깨는 고소한 맛을 낸다. 가마솥에 멥쌀을 넣고 1시간 반 불을 때 고두밥을 지어 끓는 물과 엿기름을 부어 10시간가량 두면 식혜가 된다. 식혜에서 찌꺼기를 분리한 후 3시간가량 저으며 농축시키면 조청이 된다. 조청을 주걱으로 저으며 은은한 불을 30분 정도 유지하면 갱엿이 만들어진다. 쌀 50㎏을 가마솥에 넣고 밤잠을 자지 않고 12시간가량 불 때고 저으면 갱엿 36㎏이 나온다.
된장색의 갱엿을 잡아 늘이면 마찰이 일어나 연한 노란색으로 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엿 뭉텅이에 수증기를 쐬며 두 형제가 접었다가 잡아당기는 과정을 반복하면 엿에 공기층이 생기면서 바삭하고 알싸달콤한 쌀엿이 만들어진다. 엿을 잡아 늘이는 것을 ‘쌔긴다’고 하는데 짜장면 가닥 늘이는 방법과 비슷하지만 수증기를 쏘여 굵은 가닥에 공기를 집어넣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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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로 식혜를 달이며 국자로 휘저어 갱엿을 만든다. 모두 수작업으로 한다. [사진=고재구 전통쌀엿 제공]
‘뿌리깊은나무’의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 사람》은 창평의 엿과 관련해 재미 있는 풍속도를 소개한다.
‘옛날부터 쌀로 빚음으로써 그 맛을 떨쳐 왔던 창평 엿이 지금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점차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나라에서 절미(節米) 운동을 벌이면서 쌀을 가지고 술이나 엿을 빚는 것을 법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평 엿 맛을 못 잊어 하는 큰부자가 돈을 많이 주면서 볶아댈 때나 명절 같은 때가 아니면 이곳 사람들은 좀처럼 엿을 빚으려 하지 않는다. 문을 잠그고 몰래 빚어야 할 뿐더러 자칫하면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기 일쑤인 고역을 치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 쌀엿은 덥고 습하면 물기가 생기고 달라붙어 여름에는 만들지 못한다. 겨울에 만들어 저온창고에 넣고 연중 판매한다. 수작업으로 만든 엿을 인터넷으로 판매한다.
고재구 쌀엿은 전통방식을 지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신 몸이 고생이다. 설탕은 한 숟갈도 안 쓰는 엿인데도 달다. 엿과 엿 사이에는 콩가루를 뿌려 달라붙지 않게 한다. 콩값이 비쌀 때는 쌀가루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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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를 만들 때 쓰는 엿기름을 건조하고 있다. [사진=고재구 전통쌀엿 제공]
고 씨 형제는 8마지기 논에 쌀농사를 유기농법으로 지어 엿 재료로 사용한다. 참깨도 유기농 참깨만 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한정 생산을 하니 엿은 없어서 못 판다.
조청과 도라지청도 만든다.
고재구 전통쌀엿의 판매전시장으로 쓰는 한옥은 7칸 팔작지붕으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다. 엿의 자존심을 과시하는 한옥이다.
<담양한과명진식품>
다른 고장에서는 쌀로 지은 밥도 귀하던 시절에 평야가 넓은 담양에서는 명절이나 잔치 때 쌀로 과자를 빚었다. 담양에는 창평 고씨, 문화 유씨, 장전 이씨 등 양반들이 사는 집성촌이 많다. 담양한과명진식품 박순애 대표가 시집을 왔을 때 명절이나 제사 혼례 때는 유과 쌀강정 깨강정 약과를 기본으로 해 먹었다. 박 씨도 시집(문화 유씨)에서 자연스럽게 한과 만드는 법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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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한과명진식품 박순애 대표가 한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황호택]
창평의 문화 유씨가 한과로 성공했다는 소문이 나자 창평에 한과업체들이 모여들었다. 담양군에만 담양한과명진식품, 호정가, 담양안복자한과 등 한과 업체가 다섯 개나 된다.
박 대표는 2008년 전통식품 명인 33호로 지정을 받았다. 콩강정을 만들 때는 콩을 씻어 불린 다음 영하 20℃에서 12시간 정도 얼린다. 얼린 콩을 가마솥에서 볶고 바삭바삭하게 건조시켜 조청과 꿀, 생강가루를 섞어 버무린다. 얼렸다 튀겨서 만든 강정은 딱딱하지 않아 어린이와 노인들의 간식으로 인기다.
요즘은 단맛을 싫어하는 분위기라 조청을 만들 때 건고추를 넣는다. 조청의 단맛을 고추의 매운맛으로 중화하는 레시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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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한과의 체험관을 겸한 하녹카페.[사진=황호택]
코로나 불황으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공장 바로 앞에 있는 한과 체험관을 카페로 임대 내줬다. 카페 ‘하녹’의 한옥 마루에 올라서면 월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이 넓어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카페로 소문이 났다. 하녹에서 커피와 함께 담양한과를 파니 체험관을 겸하는 셈이다.
<원조가 분명한 대통밥>
한상근 대통밥집에서는 떡갈비 돼지갈비를 곁들인 대통밥 정식 1인분에 2만8000 원을 받는다. 떡갈비와 돼지갈비 죽순 밑반찬에 토하젓이 나오니 가성비가 높다. 대통밥을 한 술 떠서 토하젓을 얹어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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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밥에 토하젓을 살짝 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 [사진=한상근 대통밥집 제공]
한상근 씨는 원래 죽제품을 만들었으나 플라스틱과 중국산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자 고민에 싸였다. 1977년 용흥사 계곡에서 식당을 하던 아내가 “죽통밥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밥이 너무 질거나 삼층밥이 될 때가 많았지만 2년 동안 실험을 통해 극복했다.
대통밥은 대통에 멥쌀 흑미 조 기장 수수 등 오곡을 넣고 큰 압력밥솥에 넣어 1시간가량 찐다. 물 조절이 중요하다. 대통밥은 밥을 찌는 과정에서 대도 함께 찌어지니 대나무 기름인 죽력(竹瀝) 성분이 밥에 스며들어 향과 식감이 좋고 영양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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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근 대통밥집의 상차림.[사진=한상근 대통밥집 제공]
<목화 식당>
담양군 홈페이지에서 ‘아침식사 가능 음식점’을 클릭하면 식당이 스무 개 가까이 뜨지만 가장 유명한 곳이 목화식당. 관광객들의 입소문과 눈, 블로그 등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의 상차림은 항상 제철 음식이어서 집밥을 먹는 기분이 든다. 가정식 백반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식재료가 신선해야 한다. 아침과 점심만 판다. 노부부는 점심을 끝내면 식당 문을 닫고 다음 날 필요한 식료품을 사러 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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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아침식사 명소 목화식당.[사진=황호택]
부부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아들이 “힘드니 식당 그만하시라”는 말을 하지만 목화식당이 문을 닫으면 담양을 찾은 손님들이 “그 영감 죽었구먼”이라고 말할까봐 문을 계속 열고 있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식당에 나와서 7시반에 문을 연다. 식당 일을 하는 게 노부부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김, 달래, 죽순무침, 황태국, 고추멸치조림, 풀치(새끼 갈치), 작은 굴비, 토토리 묵 등이 국과 반찬으로 나온다. 8천원짜리 식사에 반찬이 12가지나 됐다. 반찬을 남기는 손님이 거의 없다.
참고문헌
1. 발행인·편집인 한창기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 사람, 전라남도》 뿌리깊은 나무,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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