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논란 및 편파판정 등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중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30 MZ세대들의 반중정서가 극에 달하면서 혐중·혐한의 골이 깊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중수교 30주년 및 한·중문화교류의 뜻깊은 해가 무색할 정도로 양국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그 한편에 비켜 서 있는 우리 수출기업들은 반중정서가 한·중경제 이슈로 확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이다.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홍콩 포함)은 우리 경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흔히 얘기하는 수출 다변화가 말처럼 그렇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78년 개혁개방 이래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2021년 기준 미국 GDP의 75%를 넘어섰고, 세계 GDP에서 중국 비중은 18%, 세계경제 기여도는 25% 이상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러한 역동적인 중국시장을 빼고 글로벌 경제를 논할 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좀 더 냉정히 한·중 경제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차기정부가 들어서는 2022년은 미·중간 신냉전 악화로 인해 한·중관계는 더욱 소용돌이치고,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폭풍우가 밀려올 수도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당면하게 될 한·중관계는 단순히 양국간의 이슈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 이슈와도 연동되어 풀기 어려울 정도의 실타래가 될 수 있다. 이념적 관점에서 먹고사는 경제 사안을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중관계의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결국 경제라는 버팀목이 있어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은 한·중관계의 가장 중요한 독립변수인 경제관계를 어떻게 운영하고 리스크를 헤지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한·중관계를 설정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30년의 한·중 경제관계를 회고해 보면 92년 수교 당시 수직적 관계가 중국경제발전과 기술 업그레이드로 인해 수평적 관계로 자리매김하며 새로운 4.0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대내외 환경변화와 교역특징, 산업협력 방향에 따라 한·중 경제관계는 지난 3.0 시대를 거쳐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부터 새로운 4.0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중경제관계 1.0 시대(1992~2001)는 산업간 분업시대로 수교 이후 IMF를 겪으며 공산품 중심의 가공무역으로 인해 우리의 대중수출이 확대된 시기다. 또한 우리 기업의 대중 투자가 본격화된 시점으로 한국에서 원자재를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은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과 EU에 파는 전형적인 수직형 밸류체인 구조였다. 중국 내수시장보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ODM(제조자개발생산) 등 이른바 ‘삼래일보(三來一補, 원자재·샘플·부품 수입 후 가공+보상무역)’ 형태의 한·중간 가공무역 협력이 확대된 시기였다.
2.0 시대(2002~2012년)는 산업 내 분업시대로 2001년 12월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따른 관세혜택으로 수출확대 및 내수시장 진출형태의 대중투자가 확대된 시기였다. 중국의 제조역량이 확대되면서 지난 1.0시대 가공무역 형태에서 일반무역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2.0 시대는 중국의 WTO 가입이라는 변곡점을 기준으로 유통·게임 등 서비스 무역도 활발해지면서 한·중간 무역 불균형은 더욱 확대되며 양국간 핵심 통상이슈로 확산되기도 했다.
4.0시대(2020-미래)는 첨단산업의 경쟁적 협력관계로 본격적인 한·중산업간 초격차 시대가 될 것이다.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 8대 주력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에서 미국, EU 등 제3국에서 제품경쟁력과 가격 전가력을 무기로 한 중국산 제품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대(對)중국 무역수지도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다.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부품 등 기존 주력 수출품목의 비중이 빠르게 축소되면서 한·중간 산업구조가 8대 주력산업과 기타산업군과의 양극화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교역비중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한·중교역 관계의 착시현상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2010년 반도체의 대중 수출 비중은 15.1%정도였지만 2020년 기준(홍콩 포함) 41%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산업경쟁력 부상으로 2011~2018년 사이 미국시장에서 한·중간 경합도는 높아졌고, 미·중전략경쟁이 본격화되던 2019년 이후는 아세안 시장에서의 한·중간 상품 경합도 및 무역특화지수(TSI)도 높게 나타나며 한·중간 경쟁구조가 더욱 본격화되는 구조다.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며 양국관계는 미·중전략경쟁의 외생변수와 한·중관계 악화의 내생변수로 인해 더욱 소용돌이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의 대중통상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차기 대통령은 한·중 양국간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칙하에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가치와 이데로올기 관점에서 접근하면 결국 국민들만 힘들게 된다. 한국이 세계경제 10위권의 중견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중국이라는 세계시장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금의 한·중경제관계를 직시하고 좀 더 현명하고 전략적인 대중통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3가지의 정책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술경쟁력이 아닌 혁신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부의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기술경쟁력은 R&D(연구개발) 인력과 정책 및 자금의 정부지원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객관적으로 우리가 중국보다 중장기적으로 불리하다. 우리의 경쟁력은 결국 창조적인 혁신마인드와 속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부가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경쟁력을 키울수 있도록 각종 규제완화와 실행속도를 높여야 한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의 경우도 인력양성 및 세부 시행관련 유연성과 탄력성 측면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또한 포스트 반도체를 위한 10년 미래전략 구상을 본격화해야 한다.
둘째, 중국과 좀 더 긴밀한 소통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 요소수 사태와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한복 논란 등 대부분은 중국과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산출물이다. 한·중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조직 내 능통한 중국어 실력을 보유한 중국통상 전문가들을 더욱 많이 배치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사고방식 및 관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상호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점이 될 수 있다. 미국적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전략물자, 원부자재 등 중국수입 비중이 80% 이상인 품목이 1850개로 향후 제2의 요소수 사태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부가 구축한 핵심품목 조기경보 시스템과 글로벌 공급망 분석센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국과 중국시장의 특수성과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실효성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글로벌 표준화 경쟁에 우리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양국간 개방형 혁신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중관계를 단순히 경쟁적 측면에서 4.0 시대를 바라보면 미래의 한·중경제관계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양국은 기술, 자본, 생산 등 각 생태계 공급망이 엮여있는 관계로 미국 주도의 공급망 구축만 믿고 중국과의 밀접한 생태계를 무력화시킬 경우 결국 피해는 우리 산업계만 보게 될 것이다. 물리적 대결이 아닌 화학적인 융합형태로 한·중간 기술-자본-생산의 개방형 혁신 시스템 구축은 우리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한·중관계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지난 한·중 경제관계 30주년의 경험과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박승찬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 경영전략박사 △주중 한국 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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