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대통령 파면 이후 5년 만에 정상적인 정권 교체가 기대된다. 한편 유력 주자들의 대선 공약을 살펴보니 앞으로 5년, 국가의 운명을 다듬어보겠다는 거대 담론보다는 당장 지지자의 표심을 달래는 주제에 골몰하는 것 같다. 한편 경제와 금융 관련 공약은 부동산 문제 해법(?)과 가상자산, 공매도, 주식 양도세 등 일부 목소리 큰 투자자 표심을 겨냥한 것들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가계 금융자산은 4539조원이다. 이 돈은 일년 내내 전 국민이 애써 버는 명목 GDP의 2.4배에 이른다. 물론 한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은 금융자산보다 비중이 약 1.8배 크다. 이 때문에 부동산 정책 실패가 문재인 정부의 정권 교체론을 키운 점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금융 관련 공약은 너무 미약하다. 부동산이 없는 국민은 많지만, 아마 초등학생부터 고령자까지 예금, 대출, 펀드, 주식 등 금융거래가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가계 자산에서 금융자산 비중이 70%가 넘고 2021년 6월 기준 주식과 채권시장은 약 76조 달러로 부동산 명목가치 66조 달러를 앞선다. 금융은 그 규모와 중요성, 성장 전망을 고려할 때 소외당하고 있다. 향후 5년간 한국 경제와 금융의 환경변화를 생각하면 다음의 근본적 금융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 한국 국민은 경제개발 단계에서 저임금 노동을 제공하고, 소득은 은행과 증권회사를 통해 개발 자금으로 공급할 것을 국민 의무로 교육받고 강제당했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국민은 정부 정책, 기업, 금융회사의 이익에 늘 뒷전이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움직이는 돈은 국민이 노동이나 서비스 대가로 벌어들인 소득이 원천이 되어 세금, 기업이익, 예금, 펀드, 보험의 형태로 금융시장에 공급한 것이다. 사실 금융당국은 돈의 물길을 만들고 금융회사는 배분할 뿐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금융회사나 대기업에는 금융, 경제 안정 명목으로 국민 세금으로 손실을 메웠지만, 국민에게는 예금이나 펀드 손실을 부담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늘 국민을 홀대했다.
금융당국의 국민 홀대는 최근 가계부채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코로나19로 아직 국민 상처가 가시지도 않은 2021년 4월,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금융안정의 시한폭탄이라며 선제적 제거를 외쳤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불러온 국민 정서 악화를 의식한 듯 (특히 청년들의 ) 대출을 통한 주택 투기를 비난하고, 아울러 주식과 가상자산 투기도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프레임을 씌웠다. 사실 민간부채에서 기업부채 증가도 가계부채만큼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공공복지가 GDP 대비 약 10% 수준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지만, 재정건전성 우수국가이다. 코로나19가 닥치자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 생계지원은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고 결국 많은 국민은 버티다 못해 가계부채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고소득-고자산 계층 중심으로 대출과 투기에 집중하며 자산 가격은 뛰었고, 저소득-저자산 계층의 극히 일부는 영원히 기회를 잃을 공포에 모험에 가담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투기 단속반처럼 가계부채를 단속하며 부동산 정책 실패에 이어 국민에게 2차 가해를 한 꼴이다.
이런 한국 금융당국의 조치는 같은 코로나19 기간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통화정책 회의 회의록을 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미국 연준은 매번 통화정책 회의마다 인플레이션 관리에 실기하고 있다는 뭇매를 맞으면서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 그 온기가 저소득층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며 통화 긴축에는 극도로 조심했다. 이 정책 온도 차이는 바로 미 연준 설립 근거법의 통화정책 목표에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을 같이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연준은 통화정책과 금융정책을 미국 경제의 효율적 운영과 국민 이익 증진을 위해 시행한다고 천명한다. 미국 금융정책에 국민의 삶이 담겨 있는 것은 너무 부럽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행법에 통화정책의 완전 고용 목표를 도입하고 가계대출 등 거시금융정책을 직접 통할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금융 불평등에 대응한 ‘기본금융’
세계적 과제인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가 초래한 소득·자산 불평등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소득 상위 10%의 소득, 자산 불평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원승연 교수는 공저 <정책의 시간>에서 주장한다. 부자들과 사회 지도층이 속하는 이 10% 계층은 부동산은 물론 대출, 우량자산, 금융정보를 과점하고 짬짜미해서 금융 불평등을 키우며 사회 불공정을 고착화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금융 불평등은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다. 코로나19 이후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 가격의 폭등은 금융 레버리지 기회의 차별로 자산 불평등의 기울기를 더욱 예각으로 바꿨을 것이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의 50년 전 기대수명은 62세였으나 현재는 83세다. 길어진 수명 30년은 한 세대, 미국 장기 국채 TB의 만기이기도 한데, 경제활동 연령, 15세~64세는 고정되어있고 고령의 소비와 간호 기간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2019년 노인가구 빈곤율은 41.4%다. 이제 사람들은 젊어서 잘 버는 것 못지않게 반드시 소득을 잘 관리하고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 평생 자산관리 금융 프로세스가 잘못되면 개인이나 가족은 물론 그렇지 않아도 고령화로 총부양비가 증가할 사회에 부담이 가중한다. 또한 투자 기간 확장은 금융관리 측면에서 엄청난 위험의 증가를 의미한다. 게다가 세계는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생각하지 못한 위험도 현실화하는 블랙스완의 세계로 바뀌고 있다. 이제 현실에서 금융은 회피할 수 없으나 아주 긴 지뢰밭을 운전하는 것과 같다. 전 국민의 금융 불평등 완화와 금융 안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장치가 꼭 필요하다.
첫째, 국민에게 신뢰받는 금융조력자가 절실하다. 금융회사는 2019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이후 드러난 민낯으로 금융조력자로 적절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 추세, 특히 플랫폼 중심의 빅테크 금융 진출은 네트워크 외부효과를 통해 기존 금융산업을 빠르게 위협하고, 이익경영 압박으로 금융소비자와 이해 상충 가능성이 커진다. 아울러 빅테크 금융은 비금융-금융 고객 정보의 결합 활용으로 개인정보 침해 소지도 크다. 대부분 국민이 잘 모르지만, 천신만고 끝에 금융소비자보호법이 2021년 3월 도입되었다. 이 금소법으로 도입되는 독립금융자문업자는 신뢰받는 금융조력자로 육성할 만하다. 영리법인보다는 금융투자협회와 같은 공적인 조직 아래 개인 독립금융자문업자가 인프라 지원을 받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중립적인 금융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면 국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30년 이상 초장기 자산관리에 적합한 금융상품과 금융정보를 제공할 인프라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금융회사는 단기 경영실적 충족을 위하여 회전율이 높은 단기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래서 현 금융산업은 30년 장기 금융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에 어림없다. 가장 많이 알려진 장기 투자전략은 청년 시절은 주식 등 공격적 투자에 주력하고 노령으로 갈수록 안전 투자를 늘리는 생애주기 펀드(TDF) 전략인데, 이 또한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초장기 투자에서 초기 투자에 실패하면 아무리 평균적인 기대 수익률이 높아도 만회가 어렵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새로운 주장이다. 초장기 투자에는 확실한 저수익 복리 투자 시스템도 필요한데, 이를 위해 매년 재투자를 유예하고 발생하는 보수와 세금 이연도 필요하다. 이러한 금융상품은 이익 회수 문제로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금융회사가 제공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90년대 한국 자본시장 발전을 이끌었던 투자신탁회사처럼 초장기 금융상품, 초장기 금융투자정보 제공서비스를 담당할 공공금융투자회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공영역에서 제공하는 금융 조력 서비스와 초장기 금융상품 및 금융정보 인프라는 불평등, 불공정 금융을 개선할 ‘기본금융’ 패키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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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20년 기준 한국의 가계 금융자산은 4539조원으로 명목 GDP의 2.4배에 이른다. 부동산이 없는 국민은 많지만, 아마 초등학생부터 고령자까지 예금, 대출, 펀드, 주식 등 금융거래가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금융은 그 규모와 중요성, 성장 전망을 고려할 때 대선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나 향후 5년간의 한국 경제와 금융의 환경변화를 생각할 때 다음의 근본적 금융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국민을 홀대하지 않는 따뜻한 금융을 생각할 때다. 과거 한국 국민은 경제개발 단계에서 저임금 노동을 제공하고, 소득은 개발 자금으로 공급할 것을 의무로 교육받고 강제당했다. 금융시장에서 움직이는 돈은 국민의 소득이 원천이지만 정부 정책, 기업, 금융회사 이익의 뒷전이었다. 금융당국의 국민 홀대는 최근 가계부채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코로나19가 닥치자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 생계지원에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고 결국 많은 국민은 버티다 못해 가계부채에 기댈 수밖에 없었으나, 금융당국은 투기 단속반처럼 가계부채를 단속하고 있다. 같은 코로나19 기간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인플레이션 관리에 실기하고 있다는 뭇매를 맞으면서도 저소득층 보호를 위해 통화 긴축에 신중했다. 이 정책 온도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한국은행법에 통화정책의 완전 고용 목표를 도입하고 가계대출 등 거시금융정책을 직접 통할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음 저성장, 불평등, 고령화, 디지털 시대에 필연적인 국민의 안전한 초장기 자산관리를 위해 첫째, 국민에게 신뢰받는 금융조력자로 금융투자협회와 같은 공적인 조직 아래 개인 독립금융자문업자가 인프라 지원을 받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중립적인 금융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둘째, 30년 이상 초장기 자산관리에 적합한 금융상품과 금융정보를 제공할 인프라로 과거 투자신탁회사처럼 초장기 금융상품, 초장기 금융투자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공공금융투자회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공영역에서 제공하는 금융 조력 서비스와 초장기 금융상품 및 금융정보 인프라는 불평등, 불공정 금융을 개선할 ‘기본금융’ 패키지가 될 것이다.
조수연 필자 주요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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