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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디스커버리는 쉽게 말해, 재판 전에 서로 상대방 패를 보자고 요구하는 과정이다. 패를 보고 '고'를 할지 '스톱'을 할지를 결정하는 거다. 영화 '타짜'에 명대사가 있다. '쫄리면 죽으시든가.'" (김익태 미국 변호사)
법무부와 대법원,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올해 여느 때보다 재판 전 증거개시 제도인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추진에 적극적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결과보고서를 받아 현재 내부 검토 중이다. 대법원 디스커버리 연구반은 올해 10월 제도 도입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법원은 2015년 '사실심 충실화 사법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후에도 법원 안팎에서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매번 '다양한 검토 필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제도가 이처럼 논의에만 머무는 이유에 대해 미국 소송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재판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왜 디스커버리 제도는 우리나라에 안 어울리는가
우리나라 재판 현실에서 디스커버리 절차가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변론기일 지정 △판사 권한 등 크게 두 가지 차이 때문이다.미국 디스커버리 절차에서는 당사자가 증거조사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김원근 미국 변호사는 "디스커버리에서는 증인신문이든 문서 제출 명령과 감정 신청도 언제든 판사 승인 없이 가능하다"며 "준비서면 제출, 증거 신청, 증인 신문 등이 변론을 열지 않고도 가능하고 최종 재판에서 모두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차이는 미국 판사는 변호사나 검사가 디스커버리 절차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징계할 수 있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는 점이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가 허위 주장의 법률문서를 제출하는 경우, 증거를 일부러 숨기는 경우 판사는 징계 권한이 있다"며 "법원에 제출한 합의서에서 정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때도 징계 권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양날의 검 디스커버리···"실체적 진실" vs "어마어마한 비용"
디스커버리는 통상 세 가지 패를 요구한다. △상대방에게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하는 '서면 질의' △사건의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인정 요구' △소송 관련 자료 공개를 요청하는 '제공 요구'다.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패는 '자료 제공 요구'다.김익태 미국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디스커버리 절차가 시작되면 관련 회사나 모든 관련자들에게 '이런 소송이 진행되니까 이것과 관련한 자료는 임의로 폐기하지 말라'고 공지를 한다"며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상대방이 중요한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증거인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돼 소송에서 상당한 마이너스"라고 설명했다.
상대방 패를 하나씩 확인하다 보면 승패 예측이 가능해지고, 대부분 소송이 '합의'로 끝난다고 디스커버리 전문 변호사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김익태 변호사는 "패를 서로 하나씩 보여주면서 상대방 패가 무엇인지 알고 불필요하게 재판까지 가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합의를 유도하는 점에서는 효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세진 미국 뉴욕주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아주 촘촘하고 꼼꼼하게 사실조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되는지 순위를 매기면 한국이 OECD 국가들 중 최상위에 든다. 사건별로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미국에서는 소송을 하면 몇 배 내지 수십 배 비용이 드는데 그 주요한 원인이 디스커버리 때문"이라며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의 효율성과 포괄적 증거수집 간의 균형을 요하는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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