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교육당국은 문·이과 통합 수능이라도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입시판에서는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통합 수능까지
지난해 처음 도입된 통합 수능은 '2015 개정 교육과정 연장선이다. 당시 교육부는 문·이과 소양을 두루 갖춘 융합 인재를 키우고 학생 선택권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교육과정 개편안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개편안을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당시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안착을 강조하며 "입시 위주인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색한 교육부 대책···예견된 '문과 침공'
교육계와 학계에서는 문·이과 통합 수능이 과목 선택에 따라 성적 차가 벌어져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반면 교육당국은 공통과목을 활용해 선택과목 점수를 보정하는 방안을 발표하며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가 준비한 대책은 무의미했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지난해 12월 서울 지역 학생 12만932명을 대상으로 수능 실채점을 분석한 결과 수학 1등급을 받은 학생 중 문과생 선택 비율이 높은 '확률과 통계'를 택한 응시생은 약 5.8%에 그쳤다.
상위권에서 확률과 통계 응시생 비율이 적은 현상은 앞서 6·9월 모의평가에서도 드러난 통합 수능의 한계점이다. 6월 모의평가에서는 수학 1등급 중 확률과 통계 선택자가 6.13%, 9월에는 10.41%에 불과했다.
종로학원은 "통합 수능 첫해 자연계열 학과는 수학 고득점자 양산으로 합격선이 올라가지만 인문계열은 수학 점수 하락으로 합격선이 낮아졌다"며 "이과에서 문과를 교차 지원하면 합격 대학 수준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구는 대학별 논술 위주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장벽을 세우는 것은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권 특징이다. 이들이 직접 주관하는 수능·센터시험(일본)·가오카오(중국) 등 시험 결과는 입시에서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서구권에서는 대학별 시험이 입시 당락을 좌우한다. 미국 주요 대학들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기점으로 수능 격인 SAT 점수를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여기는 추세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 고등교육은 학과나 전공 중심으로 교육 방향을 잡고, 유럽 대학은 예전부터 문·이과 구분 없이 융·복합 교육과정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교육학계에서는 문·이과 통합을 두고 아직 논란이 많다"며 "현재 대학 학부 교육과정에서 융합 교육 여건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교육부조차 수능 두고 엇박자
일각에서는 통합 수능이 정시 확대 정책과 엇박자를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가 드러난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교육부에 정시를 확대하고 수능을 개편하는 대입 제도 개편을 주문했다.
이는 수시 영향력을 높이는 정책을 추구해온 유 부총리 기조와 반대돼 논란에 휩싸였다. 유 부총리는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으로 불평등과 특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결국 교육부는 통합 수능을 강행하면서 정시 비율도 높여 '문과 침공'을 초래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국민이 수시 전형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자 정치적 판단으로 정시가 확대됐다"며 "교육부와 청와대가 어긋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교육과정이 바뀌면 수능도 따라가야 하는데 이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수능 체제는 바뀌지 않았다"며 "개정안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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