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더욱 거세지는 ESG 돌풍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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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전 YTN대표이사) 사장)
입력 2022-03-0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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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 교수] 


글로벌 경제의 시대적 화두가 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지난해가 워밍업을 하는 기간이었다면 올해는 확산 속도가 빨라지는 ‘가속의 시기’가 될 듯하다. 현재 ESG를 선두에서 견인하고 있는 대표적 주체는 기관투자자들이다. ESG 평가가 나쁜 기업은 주가가 하락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ES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투자자 중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다. 핑크 회장은 매년 초 투자기업의 경영진에게 연례 서한을 보내 ESG의 방향타를 조율하고 있다. 그는 2020년에는 기후변화는 투자 리스크임을 강조하며, 기업에 기후 관련 리스크를 공시할 것을 촉구했다. 공시를 하지 않은 기업은 적절한 위험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보고, 경영진과 이사회에 반대하는 주주권을 행사할 것임을 경고했다. 지난해 서한도 맥락은 비슷했다. 탄소감축 계획이 어떻게 기업의 장기 전략에 반영됐는지 시장에 알릴 것을 요구했다. 올해 초 서한은 제목부터가 흥미로웠다. ‘자본주의의 힘(The Power of Capitalism)’이란 제목을 단 이 편지에서 래리 핑크는 직원, 고객, 거래기업,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와 기업이 상호 호혜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힘’이라며 이해관계자의 이해에 부합하게 실행하는 기업이 더 나은 실적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투자자의 압박이 더 거세지는 가운데 올해는 탄소중립(넷제로), 투자, 제도, 공급체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ESG 경영의 수위가 더욱 강화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빨라지는 기후변화 추세 속에서 탄소중립을 향한 발걸음은 더 구체화될 전망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지난해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기후변화 억제에 대한 공감대가 단단하게 형성된 만큼 올해부터 시작되는 연례 점검 작업을 통해 실행방안이 촘촘하게 짜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한 우리나라의 경우 2030년까지의 탄소감축 폭과 원전의 그린에너지 포함 여부 등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세계 10위권 선진경제 국가로서 대세에 동참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태다.
 
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 세계 2000대 대기업의 3분의 1가량이 넷제로 목표를 제시해놓고 있어 더 많은 기업의 참여가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RBC 캐피탈 마켓은 2022년이 기업이 잘 정의된 에너지 전환 계획을 공언하는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물론 해결돼야 할 문제가 적지 않게 있다. 대표적인 것은 표준화한 목표 지표가 없다는 점. 예컨대 경영과 생산 과정의 어느 범위까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것인지 천차만별이다.
 
다음으로 ESG에 드라이브를 거는 각국 정부의 정책이 올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관련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온 EU(유럽연합)는 공시 강화 등 조치를 추가로 도입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 인권, 반부패 등을 포괄하는 기업지속가능성 공시지침(CSRD) 개정안을 지난해 4월 채택한 데 이어 시행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이 지침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적용되고, 외국 기업의 EU 내 자회사도 지킬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EU는 또 기업의 사업장과 공급망 전체에 대해 인권 보호와 환경 위험 등을 실사하는 제도를 시행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 제도는 EU 기업의 역외 공급망에서 발생한 환경 훼손 등으로 인한 피해 구제를 위해 피해자가 해당 기업을 EU 사법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국내 기업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서양 건너 미국은 ESG에 관한 한 후발주자이다. 전임 트럼프 정권이 기후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등 ESG에 부정적 자세를 보인 탓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바이든 정권은 발 빠르게 ESG 정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했는가 하면 행정명령을 받은 정부 부처들이 기후변화가 공공 및 민간 금융자산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올해 안에 기후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SEC는 기후 및 ESG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기후 리스크 공시를 의무화하는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골격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후관련 금융공시(TCFD)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SEC가 주목하는 이슈 중 하나는 활동이나 성과를 과장하는 그린워싱으로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 조치가 나올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글래스고 COP26에서 회원국 합의로 출범한 국제 지속가능표준위원회(ISSB)가 올해 중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ESG 공시 표준도 공시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업들은 매출, 수익, 자산, 부채 등 재무적 성과를 알리는 재무제표와 별도로 지속가능보고서라는 형식으로 ESG 활동을 공시해왔다. 하지만 표준화된 측정 지표가 없어 비교가능성, 일관성, 투명성 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ISSB가 준비 중인 방안은 따로따로 공표된 재무제표와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합하고 관련 지표도 표준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어 ESG 공시가 국제적으로 단일화의 길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현재 ISSB의 작업은 국제증권관리위원회의 지지를 받고 있어 여러 국가와 규제기관에서 신속하게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업도 투자자의 압박에 따라 이를 자발적으로 채택하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은행과 국부펀드의 적극적인 ESG 투자 활동이다. 이미 팬데믹 기간 중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양적 완화 시 조달자금이 친환경 사업에 투자되는 녹색 채권만을 사들였으며 영란은행은 통화정책 목적에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환경’을 추가하고 오염물질 배출 기업이 발행한 채권 매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갈색 자산’보다 녹색 자산을 우대하는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도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 외화자산 운용에서 ESG 논란이 되는 기업을 배제하고 장기적으로 운용 전반에 ESG 관련 요소를 전면 적용하는 통합 전략을 시행하기로 했다. 국부펀드들의 투자도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갈수록 확대될 전망이다. 세계 각국 국부펀드들의 ESG 투자는 지난해 말 227억 달러로 1년 전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났다. 대조적으로 화석연료 산업인 가스 및 석유산업에 대한 국부펀드의 투자는 같은 기간 중 130억 달러에서 69억 달러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 같은 추세는 규모가 훨씬 큰 민간자본의 움직임에서 더 확연하게 가시화되고 있다. 브로드릿지의 집계를 보면, 현재 뮤추얼펀드, ETF, 민간 펀드 등을 포함한 전 세계 ESG 자산 규모는 7.8조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 중 1.3조 달러 이상이 2019년 이후에 유입된 자금이다. ESG 투자자산은 증가세를 지속해 2025년에 14조~19조 달러, 그리고 2030년에는 20조~30조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이 기관은 내다보고 있다.
 
이렇듯 ESG는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발원됐지만 정책, 금융, 기업경영, 소비자, 신용평가 등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자본주의 변화의 물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기후변화와 ESG는 한국 경제로서는 거스를 수 없는, 아니 정부와 기업이 전향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혁신 어젠다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앞에서 소개한 블랙록의 래리 핑크는 올해 초 서한에서 모든 산업과 기업이 탄소중립에 의해 크게 변화할 것이라며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다. “멸종한 도요새가 될 것인가? 불사조가 될 것인가?” 답은 절박하고 진정성 있는 대응 여부에 달렸다고 본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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