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직 삼성전자 특허담당 고위 임원이 외국 특허전문업체(NPE)와 함께 삼성을 상대로 미국에서 특허소송을 제기해 사회적 충격을 줬다. 특허전문가로 일하면서 획득한 경험과 지식을 퇴직 후 친정 기업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난 여론은 거세다. 특허관리전문업체는 특허를 기술개발이나 생산 등에 활용하지 않고 소송을 통한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특허괴물’이라는 오명이 붙어 있다. 해외 NPE는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등과 같은 대기업을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으며 대규모 배상금 또는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유럽과 같은 큰 시장에서 소송을 제기한다.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한 이런 소송은 연평균 120건에 달하며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NPE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됐다.
그러나 NPE는 조금 더 들여다보면 글로벌 지식재산(IP) 시장에서 매력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좋은 특허를 발굴해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그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투자·금융과 연결해 새로운 서비스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한다. 2010년 정부는 해외 NPE로부터 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형 NPE’인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ID)’를 설립했다. 10년간 1000억원 이상의 민관합동 창의자본을 투자해 대학·공공연구원 등으로부터 우수한 특허를 확보했다. 현재 민간기업인 ID는 그간 확보한 특허로 IP수익화, 기업투자, IP금융 등 사업추진으로 매년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내고 있다. 배동석 ID 부사장은 “수많은 실패에도 전기 보급에 성공한 에디슨의 뒤에는 그의 특허 가치를 알아주고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JP모건이 있었듯, NPE는 모래 속 진주인 특허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사업화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글로벌 혁신지수 세계 5위, 국제특허출원 4위, IP금융 6조원 등 기술 강국임에도 변변한 NPE가 없는 실정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세계 1위임에도 IP투자나 IP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가 미국·유럽보다 뒤처지고 있다. 이제 NPE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간 우리가 갖지 못한 한국형 NPE를 길러내는 것도 지식재산 부국(富國)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NPE에 대한 규제 중심의 정책과 연구 기조도 이른바 ‘K-NPE’ 양성과 이에 터 잡은 ‘특허금융시장’ 형성을 위한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동전의 양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국고 지원으로 중소기업·공공연이 개발한 특허가 부메랑이 돼 우리 대기업을 공격하는 경우다. 지난 10년간 NPE가 우리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한 1553건 중 25건(1.6%)에서 국내 기업·공공연 등이 이전한 특허 45건이 사용됐다. 국내기술로 우리 기업을 공격하는 NPE에 대한 대응책은 정부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 그 대안 중 하나로 ‘남용적 NPE’ 리스트를 만들어 대학·공공연·중소기업과 공유하고, 해외 NPE가 표적으로 삼는 특허기술은 우리 대기업에도 중요한 만큼 해당 기업 또는 국내 NPE에게 우선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만일 불가피하게 해외 NPE에게 매각해야 할 때라도 한국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는 조건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NPE 문제는 다부처의 협력을 요구하는 사안이므로 특허청이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부·중기부 등과 이미 구축해 놓은 협력체계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R&D 성과물을 기업의 혁신과 경제활동에 활용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은 해외 NPE보다 우리 특허 가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기술사업화 내재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해결책은 국내 연구기관·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의 제값을 온전히 인정하고 지식재산을 존중하는 대기업의 인식 변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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