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그때 여기 있었네, 우리》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책의 부제는 ‘글을낳는집 10주년 기념 작품집.’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신덕룡 시인의 글 ‘글을낳는집의 산책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짐이라고 해야 단출했다. 노트북과 출판사에 넘기기 직전의 원고, 세면도구와 속옷 몇 벌이 전부였다. 작은 배낭 하나로도 넉넉했다. 집을 떠나 한 달 정도 머물 계획을 세울 때, 갈 곳은 이미 정해졌다. 평소에 가깝게 마음을 나누던 김규성 시인이 운영하는 담양의 ‘글을낳는집’이었다. 가끔 들를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들과 집 뒤로 울창하게 들어찬 송림, 그리고 졸졸거리며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눈과 귀를 사로잡던 곳이었다. 담양이라고는 하지만 읍내는 물론 마을과도 멀리 떨어져 산속에 있었다. 내게 주어진 집필실은 구석방이었다.…노트북을 연결하고 책상 앞에 앉으니 유리창 밖은 온통 푸른 들판이었다. 7월의 햇살 아래, 짙은 녹색으로 물든 벼 포기를 밟으며 바람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작가들은 대개 1~3개월 정도, 길게는 5, 6개월 이곳에 묵으면서 글을 쓴다. 작가들의 공간은 모두 7개.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작가들은 12년 동안 300여 명에 달한다. 그들 가운데 67명이 이곳을 기억하는 글을 한데 묶은 책이 바로 《그때 여기 있었네, 우리》다.
글을낳는집은 담양 읍내에서 승용차로 30분 이상 걸린다. 만덕산과 연산 사이의 골짜기를 지나면 왼편으로 꾀꼬리봉 자락이 나온다. 2차로 길가엔 자그마하게 ‘글을낳는집’ 표지판이 서 있고 그걸 따라 들판 사이로 200여 미터 들어가면 소박한 가옥 너덧 채가 줄지어 있다. 그 외 주변에 인가(人家)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대로, 천혜의 무공해 청정 지역에 터를 잡은 셈이다.
글을낳는집 홈페이지 소개문이 이색적이다.
‘사방 500미터 내에는 도로(진입로 외)와 인가가 없는 한적한 공간에 울창한 적송 숲, 그리고 굽이굽이 작은 소쇄원을 연상케 하는 계곡으로 어우러진…지하 140미터 석간약수가 사철 마르지 않고 샘솟습니다. 싱싱한 반찬거리를 손수 가꾸는 텃밭 300평이 있습니다.…약제사와 전통 요리전문가가 건강 영양식단을 차립니다.…장작불로 지피는 벽난로와 세라믹 황토찜질방이 있습니다.’
홍종의 동화작가는 집필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동화작가다. “여기 온 지 며칠 안 됐지만 그 사이 원고지 250장짜리 동화를 마무리했습니다. 고창 고인돌과 관련된 스토리인데 내용도 만족스럽고, 오늘내일 출판사에 넘길 예정입니다. 집중이 잘 되고 글이 너무 잘 써지는데요. 그리고 좋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물에 좀 민감한데 여기는 물이 아주 좋습니다.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설명하는 그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저것이 문학의 열정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곳엔 텃밭도 있다. 김 시인 부부와 입주 작가들이 함께 텃발을 일군다. 그것으로 찬거리도 삼고 김장도 담근다. 김 시인은 “이곳은 문학도 챙기고 건강도 챙기는 곳입니다. 여기 있는 동안 건강이 좋아져 돌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자랑한다.
글을낳는집을 거쳐 간 작가들은 이곳을 그리워한다. 입주 작가들은 이미 2013년에도 그리움을 담아 《길 위의 안부를 묻다》를 출간했다. 《그때 여기 있었네, 우리》에 들어 있는 김상미 시인의 글이 인상적이다.
‘글을낳는집에 갔어요. 그 집엔 온갖 그리운 소리들이 다 모여 있어요 바람 소리 빗소리 새소리 나뭇잎 속살거리는 소리 물소리 숲 소리 구름 흐르는 소리 달빛 소리 해지고 해 뜨는 소리…가만히 누워 있으면 옆방에서 책 넘기는 소리 글 쓰는 소리 적막 사이사이로 개 짖는 소리…나무와 나무 풀과 풀 사이 밤새 거미줄 짜는 소리 크고 작은 항아리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 익는 소리 …지금도 들려요 그 집 앞 서성이는 내 발자국 소리 사각사각 내 펜이 원고지 위를 걷고 탁 타닥 내 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낳는 소리…’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문학을 불태우는 곳. 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봄이 되면 초록이 조금씩 조금씩 밀려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천지가 초록이지요.”
전시와 창작의 복합문화공간 대담미술관
담양읍내 국수거리의 관방천 맞은편에는 매력적인 미술 공간이 있다. 2010년 개관한 아트센터 대담. 이곳은 전시와 창작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대담미술관과 카페, 야외 공간, 게스트하우스, 체험공간, 박물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대담미술관은 전시공간으로, 최근까지 레지던시 작가들이 참여한 ‘담양을 말하다’ 전시가 열렸다. 야외마당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몇 개의 설치미술이 잘 어우러지면서 분위기를 운치 있게 만들어준다. 건물과 야외정원 뒤쪽으로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숙박을 원하는 관람객들이나 대담미술관 레지던시 작가들의 숙소로 활용한다. 감나무집, 은행나무집으로 이름 붙였는데 그 이름이 정겹다.
아트컨테이너 바로 옆에는 ‘나야나 교육박물관’이 있다. 작은 공간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전시 유물이 많지는 않지만 오래된 타자기 20여 대가 눈길을 끈다. 레밍턴 랜드, 레밍턴 포터블, 언더우드. 현대적 분위기의 미술관에서 순식간에 50~100년 전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헤밍웨이도 언더우드 타자기를 사용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예상치 못한, 신선한 경험이다.
아트센터 대담의 바로 앞 관방천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국수거리다. 가족들, 연인들이 징검다리를 건너 아트센터 대담과 국수거리를 오간다. 쫙 펼쳐진 징검다리 모습도 좋고 아트센터 대담에서 바라보는 국수거리 풍경도 좋다.
<이광표 서원대교수·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 글을낳는집 엮음, 《그때 여기 있었네, 우리》, 문학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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