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쇠사슬녀, 철창녀…중국의 심각한 여성인권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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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중국본부 팀장
입력 2022-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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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 남성에 팔려가는 여성들

  • 인신매매 영화 '맹산(盲山)'···"현실이 더 끔찍"

  • 산아제한 정책 폐단···남녀 성비 불균형 심각

  • '인신매매와의 전쟁' 선언···양회서도 '뜨거운 감자'

"여성 유괴 인신매매 범죄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고 여성과 아동의 합법적 권익을 보장하고 노인·장애인 지원 서비스 체계를 완비하겠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 정부공작보고 민생 부문에서 이 대목을 읽자마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근 중국에 쇠사슬녀(鐵鏈女), 철창살녀(鐵籠女) 등 여성 인신매매 사건이 줄줄이 폭로되며 여성 인권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서다.

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서도 중국 내 여성·아동 인신매매 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정도로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1998년 인신매매로 장쑤성 시골 농촌에 끌려와 세 차례 인신매매를 통해 남성에게 팔린 샤오화메이. 애를 여덟 낳고  쇠사슬에 묶여 감금된 채로 학대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사진=웨이보] 

인신매매로···농촌 남성에게 팔려가는 中여성들
올해 1월 말 중국 장쑤성 쉬저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로 가축우리 같은 헛간에 갇힌 한 여성을 찍은 동영상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며칠 후 이 여성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8명의 아이가 있다고 자랑하는 동영상도 공개됐다. 

공분한 중국 누리꾼들의 끈질긴 수사 끝에 진상이 밝혀졌다. 이 여성은 윈난성 시골 마을 출신인 샤오화메이로, 세 차례 인신매매를 통해 현재 장쑤성의 농촌 남성에게 팔려와 자녀 8명을 낳은 것으로 확인됐다. 쇠사슬에 묶여 감금된 채 학대를 받아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처음엔 인신매매나 납치가 아니라고 해명하던 현지 지방정부도 약 2주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인신매매 사실을 시인했다.  뒤늦게 조사팀을 꾸려 진상을 밝힌 당국은 이번 사건을 무마하려던 현지 지방 하급관료 17명에게 면직, 직위 강등 등 중징계를 내렸다. 또 납치범은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여성을 구매한 남편과 그 가족들도 학대죄로 기소했다. 

쇠사슬녀 사건에 중국 누리꾼들은 분개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 SNS인 웨이보에는 쇠사슬녀와 관련된 상위 3개 해시태그 누적 조회 수가 100억회 이상을 기록했다. NYT는 중국 정부와 관영언론이 대대적으로 선전한 베이징 동계올림픽만큼이나 높은 관심도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중국 내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여성 인신매매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중국 공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여성·아동 납치·인신매매로 입건된 사례는 2425건에 달했다. 2013년 2만735건과 비교하면 약 88%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쇠사슬녀 사건을 계기로 중국인들 사이에선 납치 혹은 실종된 어머니, 딸, 친척, 친구 이야기가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우리는 (여성 인신매매의) 방관자가 아닌 생존자"라고 했다. 사실상 중국 전역에서 여성 인신매매 범죄가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쇠사슬녀에 이어 지난 2월 폭로된 철창살녀 사건 전말도 끔찍했다. 칭하이성 민족대학에 다니는 왕궈훙이라는 여대생이 2009년 실종됐는데, 최근 산시성 위린에서 발견된 것이다. 산시성 위린에 사는 인터넷 방송인 리씨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콰이서우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본인 입으로 직접 여대생을 키웠다고 자랑하면서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는 2009년 이 여성을 유인해 성노예로 삼아 1남 1녀를 낳았다. 탈출을 시도하는 여성을 철창에 가두고, 나중에는 이웃 남성에게 3만 위안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자료=중국 공안부] 

인신매매 고발 영화 '盲山'···"현실이 더 끔찍"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여성 인신매매 범죄는 일반적으로 빈곤한 시골 동네에서 정신지체를 앓는 취약계층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지지만, 대학생·직장인 등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탈출에 성공한 여성도 극소수다. 시골 마을 전체에서 인신매매 여성을 감시하는 구조여서 여성이 혼자 힘으로 탈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탈출을 시도해 붙잡히면 구타 세례가 이어진다. 

과거 여성 인신매매 현실을 고발한 영화도 있었다. 리양 감독의 2007년작 '맹산(盲山)'이다. 그해 열린 제60회 칸 영화제 최종 후보작까지 올라간 작품이다. 

영화는 납치 후 산간벽지의 한 농촌 남성에게 팔려간 여대생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속에선 이곳 농촌 마을 사람이 전부 공범자다. 여주인공이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감시 아래 번번이 잡혀 모진 구타를 당한다. 자신을 구출하러 온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결국 여주인공이 남편을 칼로 찔러 살해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동북 출신인 정수리라는 여성이 실제 겪은 사연을 각색해 만들었다. 1994년 전문대 졸업 후 광둥성 주하이에서 일하던 정씨는 한 직업소개소 남성의 꾐에 빠져 광둥성 시골 마을 농민에게 팔렸다. 강제로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지만 가족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어린 시조카에게 황산을 뿌려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고는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리양 감독은 2015년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보다 현실이 더 끔찍하다”며 “인신매매로 잡혀온 여성이 나체로 동굴에 갇혀 성노예로 전락하거나 일부 시골에선 형제가 한 여성을 공동 소유하기도 한다"고 고발했다. 
 
산아제한 정책 폐단···남녀 성비 불균형 심각
하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여성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법적 장치가 취약하다. NYT에 따르면 여성 인신매매 범죄에서 여성을 구매한 측의 최고 형량이 고작 3년 징역형이다. 이는 불법 동식물 매매와 동일한 수준이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해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해 중국을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국가 중 하나로 분류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중국 정부 정책이 여성 인신매매 범죄를 '후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에 여성 인신매매가 만연한 데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35년 넘게 시행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중국 남녀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것도 문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남성과 여성 인구는 각각 7억2311만명, 6억8949만명으로 3362만명 차이가 난다. 

현재 중국 내 남녀성비(여성 100명당 남성 수)는 104.8명이지만 신생아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로 계산하는 출생성비는 지난해 111.3명에 달했다. 출생 연도별로 살펴보면 1980년대생은 102대 100 정도였으나, 1990년대생은 110대 100, 2000년대생은 118대 100으로 갈수록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시골 농촌에선 더 심각하다. 중국에는 노총각 마을이라는 ‘광군촌(光棍村)’이라는 신조어까지 있을 정도다. 
 
'인신매매와의 전쟁' 선언···양회서도 '뜨거운 감자'
쇠사슬녀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중국 공안부도 ‘인신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공안부는 올해 여성·아동 인신매매 범죄 특별 단속 기간을 설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여성인권보장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1992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2005년, 2018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3차례 수정을 거쳐 의견 수렴 중이다. 의견 수렴 기간인 한 달 동안 8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42만개 넘는 의견을 올렸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3월 8일 여성의 날(중국명·부녀절)을 맞아 양회에서도 여성인권 보호와 인신매매 근절 목소리가 높았다. 전인대 대표로 활동하는 중국 실종아동 찾기 사이트 창업주 장바오옌은 "현재 여성 인신매매 납치범에 대한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들에겐 공소시효(20년)를 폐지하고 죽을 때까지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협 위원으로 활동 중인 주정푸(朱征夫) 중국 변호사협회 부감사장도 "현재 인신매매범은 5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지지만 구매자 측은 고작 3년 이하 징역형을 받는 게 전부"라며 구매자도 인신매매범과 마찬가지로 형량을 똑같이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협 위원인 셰원민(謝文敏) 변호사는 "유괴된 여성이나 아동을 구매한 범죄에 대해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형벌을 강화해야 인신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대다수 정협 위원들은 농촌 마을 주민들의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불감증을 해소하고, 유괴된 여성을 구매한 행위도 심각한 범죄임을 인식시켜야 하며 여성·아동 인신매매에 대한 사회적 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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