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개막]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강골 검사' 尹 대선까지 거머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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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기자
입력 2022-03-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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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수 만에 사법시험 합격...35살 늦깎이 초임 검사

  • 국정원 수사 후 좌천...국정농단 때 '스타 검사'로

  • 文정부서 승승장구 하다...조국 사태 때 결별

  • 추미애 장관과 갈등 최고조...대선 출마 선언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 때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폭로하면서 이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에서 한직을 돌던 윤 당선인은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일약 ‘스타 검사’로 발돋움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기수를 뛰어넘어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데 이어 검찰총장을 지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통해 문 정부와 각을 세웠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은 끝에 검찰총장직을 내려놨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 당선인은 오직 국민만 바라보겠다고 강조하면서 지난해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출마 직후 단숨에 제1야당 후보에 오른 윤 당선인은 천신만고 끝에 안철수 국민의힘 대표와 극적 단일화를 거쳐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윤 당선인은 대광초, 충암중, 충암고, 서울대 법대를 거치며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사법연수원 입학 전 모습. [사진=국민의힘]

◆장면1=9수 끝에 사법시험 합격
 
청년 시절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서 낙방했다. 이후 9번 연속 떨어진 뒤 서른을 훌쩍 넘긴 1991년 사법시험(33회)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23기)를 수료한 뒤 대구지검에서 35살 늦깎이 초임 검사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의리파’로 소문이 나 있다. 8수생 시절에는 친구 아내가 입원하자 그의 자녀를 직접 돌본 일화도 있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사법시험 3차 면접을 못 볼 뻔한 김선수 대법관을 위해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의 아버지인 이종찬 의원을 찾아가 읍소한 일도 있다.
 
◆장면2=국정농단 사건 진두지휘
 
윤 당선인은 2013년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팀장 시절 정직 1개월을 받고 한직을 떠돌았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돼 수사 일선에 복귀한다. 특검팀에서 삼성 수사를 지휘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도 파헤쳤다. 검찰을 특검팀의 수사를 이어받아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에 이른다.

◆장면3=중앙지검장·검찰총장에 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윤 당선인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지명했다. 기수 문화가 생명인 검찰 조직에서 다섯 기수를 뛰어넘고 윤 당선인은 중앙지검장에 올랐다. 중앙지검장 시절 국정농단, 국정원 공작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의혹, 방산비리 등 이른바 적폐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7월 윤 당선인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여러분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리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당선인 대학교시절 모습. [사진=국민의힘]

◆장면4=조국 수사와 秋-尹 갈등
 
윤 당선인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기점으로 문 정부와 사실상 결별하게 된다. ‘살아 있는 권력’에 수사를 마다하지 않은 윤 당선인은 여권과 정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 전 장관 수사를 밀어붙였다. 이밖에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 사실상 청와대를 정조준했다.
 
문 정부와의 갈등은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빚으며 정점을 찍었다. 추 전 장관이 인사권을 가지고 윤 당선인을 흔들었고, 징계 카드까지 꺼냈다. 윤 당선인은 법원으로부터 징계 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판단을 받았지만, 지난해 3월 결국 검찰총장 옷을 벗었다.
 
◆장면5=정치 선언 후 제1야당 후보 등극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을 사퇴한 지 약 4개월 후인 지난해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검찰총장 사퇴 117일 만이다. 윤 당선인은 출마 선언 당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워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이때 이미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선 출마 선언 한 달 만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윤 당선인은 ‘국민이 키운 윤석열’을 슬로건으로 경선을 치른 뒤 제1야당 후보에 올랐다. 이후 ‘젊은 세대’의 상징인 이준석 당 대표와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냈고, 안철수 국민의힘 대표와 야권후보 단일화까지 이뤄냈다. 특유의 포용력을 바탕으로 막판에 중도표심을 사로잡으면서 최종승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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