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금융 시장 빠르게 성장... 법·기술적 문제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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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기자
입력 2022-03-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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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연구원 '탈중앙화금융의 확산과 향후 과제'

금융기관 없이 블록체인에서 금융서비스를 구현하는 탈중앙화금융(이하 디파이) 시장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적으로 은행 같은 금융기관 없이 블록체인에서 금융서비스를 구현하는 탈중앙화금융(이하 디파이) 시장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법적, 기술적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탈중앙화금융의 확산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이후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디파이 서비스에 예치된 가상자산 규모는 약 826억 달러로, 2020년 말 267억 달러 대비 3배나 커졌다. 가상자산에 익숙해진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새로 유입된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디파이, 대체불가능토큰(NFT)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가장 활성화된 서비스 분야는 대출 부문이며, 디파이 거래소, 자산관리, 파생상품 등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디파이는 블록체인 상에서 은행 같은 금융기관 없이 스마트계약,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구축된 P2P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스마트계약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거래가 체결되는 블록체인상의 기능을 말한다. 금융 거래로 치면 약정서와 같다. 디파이 플랫폼 대다수는 이더리움의 디앱으로 구동된다.
 
디파이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상호 신뢰로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이다. 금융제도를 대신하는 건 블록체인 합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신뢰다. 거래 시 일반 법정화폐 대신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을 쓴다. 규칙을 바꿔야 한다면, 해당 토큰을 보유한 네트워크 참가자간 합의가 이뤄진다. 또한 전통금융이 실명 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반면, 디파이는 익명성이 특징이다. 이에 누구나 거래에 참여할 수 있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통적인 예금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상당한 수준의 물적·인적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디파이에서는 별도의 자본금이나 전산 설비가 없더라도 누구든지, 심지어 일반 개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서비스 규칙을 생성함으로써 예금을 비롯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간편하게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파이 관련 이미지[사진=픽사베이]

그러나 이 같은 특성은 자금세탁, 테러자금조달 같은 불법 행위에 활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존 금융기관의 경우 자금세탁, 테러활동, 탈세 방지를 위해 의무적으로 고객 신원확인을 하는데, 디파이 플랫폼은 이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디파이 플랫폼이 금융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아야 할지,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도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법정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 거래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금융기관과 동일한 규제가 필요한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디파이 플랫폼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어떤 국가와 부처가 개입해야 하는지 법적 관할권도 모호하다. 2020년 기준, 디파이 플랫폼 17곳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했고, 스마트계약 버그가 악용돼 1억5400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 탈중앙화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디파이는 아직 책임, 보증과 관련한 법적 장치가 없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피해구제를 받을 수 없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블록체인 상에 디파이 서비스가 개시되면 전 세계 참가자들이 이용하게 되므로 이러한 서비스를 규제해야 할 관할권이 어느 국가 법원에 있는지, 분쟁 발생 시 소송 당사자는 누가 돼야 하는지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디파이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이더리움이 거래 처리 속도가 느리고 거래가 몰리면 수수료가 올라가는 등의 문제도 있다.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이같은 문제를 개선한 ‘이더리움 2.0’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아직 개발 진척도는 50%인 점을 고려하면 기술 극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외에도 탈중앙화, 권력 분산이라는 디파이의 가치가 현실에선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디파이 플랫폼은 거버넌스 토큰 보유자들의 투표로 서비스를 변경한다. 이 경우 거버넌스 토큰을 개발한 이들과 초기 투자자 등에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이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디파이 플랫폼의 코드 수정, 보상지급 비율 등이 정해진다는 의미다.
 
김 연구위원은 “디파이 플랫폼의 지배구조가 해당 플랫폼이 표방하는 대로 실질적 분권화를 달성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거버넌스 토큰 보유자 개개인이 디파이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사려 깊은 투표 활동을 지속할 유인이 있는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의 가격 변동성이 기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파이 대출 플랫폼의 경우 가상자산을 담보로 다른 가상자산을 대출받아 이를 통해 새로운 대출을 일으키면서 레버리지를 높이다가 담보 자산가치가 급변하면 연쇄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경 간 제약이 없는 디파이의 특성상 리스크 요인에 의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디파이 관련 제도 정비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도출된 합의사항을 바탕으로 국내 제도를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에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디파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고, 규제방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디파이 서비스 운영에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에게도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적용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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