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윤석열 외교, 출발부터 비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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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2-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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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지난 3일 윤석열 당선인의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이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우리나라 대통령 직접 선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듣도 보도 못한 대표단이 만들어져 파견된  것이다. 1980년 이후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사절단이 해외로 파견된 적은 있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당선인의 특사가 취임식 초청장을 전하러 주변 4강국에 파견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주변 4강의 특사가 우리 측 대통령 당선인을 예방하여 축하 서신을 전달한 이후 진행됐다(<표-1·2> 참조). 이번 대표단의 '선제' 파견은 윤석열 신정부가 내세운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에 어긋난 결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식을 하기도 전에 이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이 내걸었던 국정 슬로건이 항상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정의 사회 구현과 선진 한국 창조'를 내세웠지만 가장 비(非)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겠다던 노태우 정권은 기득권의 배만 더 채워줬다. 김영삼 문민정부는 ‘신한국 창조’를 내세웠으나 어떠한 창조도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라는 기치하에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햇볕정책을 개진했다. 하지만 그의 치적은 역으로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한 종잣돈(시드머니)과 시간을 확보하는 데 현격한 공로를 세운 것으로 기억된다. 노무현 정권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특권 없는 사회'를 표방했다. 결과는 역시나 386세대에게만 허락된 불완전한 참여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을 자청하며 ‘국민 성공 시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성공한 국민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로 막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창하면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자신했다. 결과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졌다. 지난 5년 동안 국민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세상’을 겪으면서 공정과 상식이 시대정신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 정의와 법치가 시대정신이 되면서 윤석열 당선인도 이를 자신의 대선 출마 이유로 내세웠다. 6월 29일 그는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는 다짐과 함께 대선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달 10일 당선 인사에서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비쳤고 “오직 국민만 믿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며 “(국민의 뜻에 따라)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고,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최소한 외교 분야에서는 이미 상식적이지 못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가 외교와 관련해 보여준 언행에서 벌써부터 모순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정해진 법칙처럼 이런 오류가 반복되는 것은 국정 비전과 사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전과 사상의 결핍은 곧 원칙의 부재로 이어진다. 원칙이 없으면 정책과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원칙 없는 전략은 논리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진다. 문제는 이런 경우 왕왕 나타나는 언행이 현안이 돌출할 때마다 등장하는 ‘땜질식’ 대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안마다 임시적·즉흥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결과는 ‘꼼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령 지난달 25일 인수위 대변인은 윤석열 당선인과 시진핑 주석의 통화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 당선인이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과 통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취임한 시진핑 주석의 재임 기간은 9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9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선은 단 두 차례, 따라서 당선인도 단 두 명뿐이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당시 당선인은 그 자격을 만 하루도 유지하지 못했다. 당선 이튿날 대통령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주석 입장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를 나누게 된 셈이었다. 상기한 표에서 나타나듯 중국은 2000년 이후 우리 당선인에게 매번 특사를 파견해 축하해왔다. 그래서 인수위 대변인의 설명이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오히려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중국 측에서 특사가 없을 것이라는 현실에 연막을 치기 위해 인수위가 '꼼수'를 부린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의 미국 파견 목표는 '미국 조야의 정책 입안·집행자들을 두루 만나 차기 정부와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한·미 동맹, 한반도 문제, 동아시아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사전 조율'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례 없던 특사 ‘선제’ 파견에 비판의 목소리가 일자 인수위 측은 이들은 특사가 아니라며 '정부 대표 및 특별 사절의 임명과 권한에 관한 법률'을 들어 당선인 신분으로 특사를 보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 지난 당선인들의 특사 파견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하나. 이들은 법을 위반한 것인가.

당선인이 된 지 한 달 즈음인 이 시점에서 이들이 특사가 아닌 정책 협의 대표단이라는 비상식적인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특사 신분이 아닌 것을 덮기 위해 전문가 집단으로 포장하려는 꼼수다. 인수위 측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한·미 간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과 사전 조율을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과연 외교 비전과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 원칙과 전략도 없는 상황에서 혈세 낭비가 뻔한 행보를 굳이 진행할 필요가 있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특사 자격도 아니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당선인의 뜻을 어떻게 전할 것이며 그 뜻이 당선인의 전권을 부여받지 않은 전문가의 견해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결국 한국 대표단의 행보는 간보기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런데 간보기도 국정 철학과 사상이 뒷받침되어 원칙이 수립되었을 때만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만남은 문자 그대로 의견 교환과 입장 확인에 불과할 것이다.

외교 비전과 사상, 원칙과 전략의 부재는 이들의 구성원에서도 드러난다. 한·미 동맹 강화가 명분이라면 이에 부합하는 이들로 구성됐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한··미 동맹의 새로운 협력의 장은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서에서 다 밝혀졌다. 특히 과학기술, 4차 산업혁명, 원자력, 기후변화 등 부문에서 한국과 협력을 갈망하는 미국 측 입장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렇게 미국이 ‘가려운 곳’이 많은데 그곳을 긁어주지 못하는 모양새가 이번 대표단의 구성원에서 나타난다. 한·미 동맹의 강화뿐 아니라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외교 전문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도 포진했어야 한다.

윤 당선인의 외교가 최우선시해야 하는 국정 과제는 상기한 영역에서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조직과 기구의 형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이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정책 협의단의 최대 목적과 역할이어야 한다. 왜냐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이른바 ‘카운터파트(counterpart·상대할 수 있는) 조직’이 우리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물론 우주산업,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등을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 조직이 존재하는 특정 영역이 있긴 하지만, 그들 조직이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를 정비해 하나의 소통 창구를 설립해 미국과 보다 효율적이고 원활한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또 하나의 비상식적인 외교 꼼수가 외교부에 통상 기능을 회복하려는 구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수위는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다시 부활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는 통상이 외교라는 시대적 역발상에서 비롯된 시대 역행이다. 작금의 통상 문제는 매우 전문화되고 그 영역도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통상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처가 요구된다. 비록 통상만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부처를 신설하지 못할지언정 기존의 산업자원통상부를 개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세계의 통상 관계는 무역의 범주를 벗어난다. 경제안보 시대에 우리의 통상은 산업은 물론 자원 영역과 불가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통상 문제는 단순히 자유무역협정이나 무역의 불공정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통상이야말로 경제안보를 담보한다. 미국, 중국, 일본이 통상을 전담하는 부처를 운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우리 외교는 이른바 ‘3무(무원칙·무논리·무사고)’를 경험했다(본지 2019년 9월 9일자). 윤석열 당선인은 외교 기조를 “힘을 통한 평화”로 잡았다. 이런 힘엔 두 가지 원천이 있다. 물리적인 군사력과 지혜에 기초한 외교력이다. 그중 외교력은 지력, 통찰력, 사고력, 판단력과 설득력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국정 비전과 사상, 원칙과 전략이 마련될 때야 비로소 그 역량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상식적이고 정정당당한 외교는 사상, 개념, 원칙, 논리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꼼수가 아닌 진정한 외교력을 구사할 수 있다. 그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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