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100여년 깨달음 머무는 곳, 잠시 쉬어 가라 나를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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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익산(전북)·영광(전남)=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2-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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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형 그대로 보존된 익산성지

  • 소태산 대종사 깨달음 얻은 영산성지

  • 망설이는 발걸음에 "어서 오시라" 권유

  • 개방적·합리적인 원불교 본연의 모습

  • 봄꽃과 목조건물 마음 사로잡아

전남 영광 영산성지 중 소태산 대각지. [사진=기수정 기자 ]

봄꽃이 꽃잎을 피워내기 시작하던 4월 초, 호남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익산(전북)과 영광(전남)에 자리한 원불교 성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성지순례' 자체는 익숙했다. 다만 그 공간이 성당이었고, 교회였으며, 사찰이었을 뿐. 원불교가 우리나라 4대 종교에 속한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 그외 모든 것에 무지했다. 

낯섦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알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을까. 목적지를 향하는 내내 가슴은 설렜고, 발걸음은 퍽 가벼웠다. 
 

원불교 중앙총부(익산 성지) 공회당 전경. 불법연구회 시절 대중 집회실로 쓰였다.[사진=기수정 기자]

◆봄기운 머금은 익산 성지···문 '활짝' 열렸다 

원불교 성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종교 자체가 워낙 낯설기도 했지만, 성지 순례 범주 안에 원불교를 끼워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익산으로 향했다. 도로 하나를 두고 원광대와 마주 보는 곳에 원불교 중앙총부(익산 성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중앙총부 안쪽은 봄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발을 선뜻 안으로 들이진 못했다. '아무나 들어가도 되는 곳일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옆에 있던 박대성 원불교 교정원 문화사회부 교무가 심중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얘기했다. 

"이곳은 누구나 와서 산책하기 좋은 곳입니다. 봄꽃도 아름답고요, 원광대 학생들도 산책하러 많이들 오곤 하죠. 믿음이 없어도 좋습니다. 어려운 곳이라고 여기지 말고, 그저 계절을 만끽하기 좋은 여행지로,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산책 공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불교의 입법·사법·행정이 총집결한 '중앙본부'에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것에, 아니 오히려 "어서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원불교 교무의 이야기에 적잖이 놀랐다. 

여기서 잠깐,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구도 끝에 진리를 깨닫고 세운 종교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에 불과했다. 단군을 교조로 하는 대종교, 최제우가 세운 천도교, 강일순이 세운 증산도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4대 민족종교다.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다. 불법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특히 강조한다는 점은 불교와 맥을 같이하는 듯하면서도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기독교나 불교에서는 유일신을 숭배하고, 절대자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하는데, 원불교는 다르다. 좀 더 실리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를 표방한다. 여느 종교의 '배타적'인 성향이 배제됐기에 혹자는 '이것이 과연 종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박대성 교무는 "그래서 합리적인 종교가 바로 원불교"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제 다시 원불교 중앙총부 이야기. 

원기 9년(1924) 9월 교화 기지로 건설된 중앙총부는 교단을 주재하는 종법사(교단의 최고 직위)를 비롯해 최고 결의기구인 수위단회, 중앙집행기관인 교정원, 감찰기관인 감찰원, 의결기구인 중앙교의회로 구성됐다. 중앙교의회는 교단의 결의 기관으로 교헌 개정, 예산 결산, 중요 교산 처리 등 교단의 핵심적인 내용을 결의한다. 교정원은 교단의 중앙집행기관이고, 감찰원은 교단 내 사법 검찰 기능을 담당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 28년(1943) 열반하기까지 주재해 법을 펼쳤다.

1924년 9월 익산총부를 건설하면서 최초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해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 건물이 초창기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역사적 자취가 고스란히 보존된 이곳은 종교사적·지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됐다. 

중앙총부 기능도 기능이었지만, 100여 년을 이어온 목조건물들과 잘 가꿔진 조경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달까. 

따사로운 햇살 머금은 중앙총부는 아름다웠다. "종교와 상관없이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은 곳"이라고 얘기한 박대성 교무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소태산 대종사 생가.[사진=기수정 기자]

◆원불교 탄생지 영산 성지···봄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익산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다다른 곳은 영광. 이곳에 원불교 탄생지인 '영산성지'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1891~1943)가 탄생해 성장하고, 구도고행으로 큰 깨달음을 얻어 대각을 이룬 곳이다. 

대종사의 생가, 기도터인 삼밭재, 마당바위, 대각을 이룬 노루목,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룬 정관평 방언답에 이르는 곳곳이 모두 성지다. 

 소태산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전해진는 대각지에는 일원상을 새긴 일원탑과 조선총독기념비를 깎아내고 만들었다는 대각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1891년 소태산 대종사가 태어난 생가는 초가지붕과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생가를 1981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현재 모습으로 복원했다. 방 안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상 위에 촛불, 경종, 목탁이 놓여 있었다. 

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원불교에서 말하는 '백지혈인(白指血印)'의 기적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구수산 일대 아홉 봉우리에서 기도를 올리던 제자들(제자라고 했지만 사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선후배들이다)을 불러모은 박중빈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대들이 죽어야만 정법회상(正法會上·진리의 바른 법)이 세상에 드러나 구원을 받게 된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죽을 수 있겠냐"고. 그러자 제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모두 목숨을 버리겠다고 입을 모았다.

자결을 결심한 날이 다가왔고, 박중빈은 '사무여한(死無餘恨··죽어도 여한이 없다)'이라고 쓴 백지에 제자들의 지장을 받았다.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맨손으로 찍은 도장이 기도하는 도중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 기적이 행해진 자리가 지금 '구간도실(九間道室)' 터다. 조형물은 9개 손가락을 본떴다. 

영산성지에는 영산선학대학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도 여럿 눈에 띄었다. 100여 년 세월이 흐른 이곳 건물들 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왕이 과거를 주관하며 쓰던 건물인 융문당은 경복궁에서 옮겨와 영산선학대학 앞에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헐려 용산에 있던 일본 절의 부속건물로 전락해버렸는데, 광복 직후 이를 사들여 서울교당 법당으로 사용하던 원불교가 2007년 건물을 이곳으로 옮겼다. 융문당과 함께 짝을 이뤘던 융무당도 이곳으로 함께 옮겨 마을박물관 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그날의 익산, 그리고 영광은 참으로 화사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가. 매화와 산수유 사이에서 수줍게 꽃망울을 틔우는 벚꽃을 바라보았고, 바람에 실려와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으려는 꽃잎을 손에 받아들었다. 그저 천천히 걸으며 일상에 쉼표를 찍었다.

그렇게 마음에 쉼을 얻었다. 모든 순간이 포근하고 아름다웠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질주하듯 내달려온 각박한 일상에 잠시나마 청량한 공기를 불어 넣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그날, 그곳에서 마주한 모든 것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폐부 깊숙이 박혔다. 
 

영광 영산성지 소태산 대각지[사진=기수정 기자]

소태산 대종사 생가로 향하는 길[사진=기수정 기자]

정관평. 원불교 초창기, 소태산 대종사와 9인의 제자와 함께 바다를 막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진=기수정 기자]

영광 영산성지 영모전. 원기65년(서기1980년)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기수정 기자]

일원상이 봉안된 영산성지 대각전 [사진=기수정 기자 ]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 지어진 송대. [사진=기수정 기자]

원불교 중앙총부(익산 성지) 영모전. 한국 건축의 곡선미와 서구 건축의 웅장미가 조화를 이룬다. [사진=기수정 기자]

2021년 10월 8일 전라북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송대. [사진=기수정 기자]

백지혈인의 기적을 기념하는 조형물. 인주 없이 맨손으로 찍었다는 아홉 제자의 손가락을 형상화했다.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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