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아주경제신문은 다음 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새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뜻에서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 4강 외교 이렇게’라는 시리즈 칼럼을 마련했다. 시리즈 칼럼은 ① 중국편 박승준 논설고문 ② 미국·북한 편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③일본편 신각수 전 주일대사 ④ 유럽·러시아편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의 순서로 연재한다.
2022년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국제정치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로 한미수교 140주년, 1992년 이래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취임 10주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출생 80주년(2.16), 김일성 주석 출생 110주년(4.15)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석열 당선인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외교안보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윤 당선인에게 미국과 북한에 대한 정책을 제언해 본다.
우선 한국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미·일 협력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내세우는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을 중심으로 가치동맹을 발전시키는 기본 전제를 충실히 이행해야 할 상황이다. 이는 대북한 관계에서도 유용한 외교적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북한의 최대 외교 목표는 북미 관계개선을 통해서 미국이 앞세우는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관계정상화로 안보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미동맹 강화는 자주적 남북한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북한과 중국에 대한 압박과 봉쇄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은 중·미 양국으로부터 불신을 받아서 오히려 한국 입지를 약화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서 양국으로부터 믿음을 얻는 전략적 신뢰성(Strategic Reliability)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사드(THAAD) 배치에 대해 자체 예산을 들여 미군과 군속들, 그리고 군사시설을 북한 핵과 미사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을 배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한국은 2016년 사드가 배치되기까지 중국 측에 한·미 간 3무(無요청, 無협의, 無결정)로 무마하려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갑작스럽게 배치 결정을 하고 장소를 군부대에서 민간시설로 변경했다.
중국이 내세우는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竝行)’은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하자는 방안이라고 한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를 중단하고, 한국은 미국과 연합훈련을 중단하며,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해서 논의하자는 제안이다. 그래야 북한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쌍궤병행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미국을 설득하려면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한국은 투명하고 개방적인 논의를 통해서 전략적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이 모두 한국의 입장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면 한국정부의 노력은 ‘양다리 걸치기’로 인식해서 미·중 양측으로부터 불신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떠한 제재 완화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회담 결렬을 통해서 이미 영변 핵시설 비핵화 정도로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대북제재를 통해서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심적인 협상 기제로서 국제공조를 통한 제재를 중시한다. 향후 한미 양국 정부의 정책조율에서 제재 완화를 둘러싼 양국의 견해 차이는 핵심적인 분쟁요인이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축으로 ‘가치동맹’을 통해 이를 바탕으로 대중국 관계에서 우위(a position of strength)에 서겠다는 전략을 내세운다. 미·중 간에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한 관계의 속도 조절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사안별로 남북교류에서 앞서나가려고 하다가 미국의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됐다. 한국은 미국과 확고한 신뢰 관계 구축을 통해서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이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인 만큼 미국 입장만을 대변하게 된다면 북한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미 신뢰관계 구축을 통해서 남북한관계를 단계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대중국 강경책에 따라 미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압박과 북한에 대한 제재를 지속하면서 실용적이고 정교한 대중국 견제구상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에 대해 세계 미래를 위한 민주국가 대 독재국가 간에 벌이는 근본적인 논쟁으로 인식하고 민주주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과 더불어 대중국 압박에 동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른 쿼드(QUAD, 미국·인도·호주·일본)와 쿼드플러스(한국, 베트남, 뉴질랜드)에 참여하라는 요청이다. 한국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 이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전략에 호응해야 한국의 입지를 넓힐 수 있다. 한·미 미사일지침이 종료되면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한국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포석으로도 분석된다. 중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쿼드가 달갑지 않다. 한·미·일 협력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인위적인 고립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어서 주시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와 시진핑 체제의 대결 구도가 가시화되면서 한국의 외교 정책은 다시금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중국의 부상을 막아보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느 수준까지 동참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미국은 철통 같은(ironclad)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실천을 통해 한국이 기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쿼드에는 반도체 등 신기술, 백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워킹그룹이 있다. 미국의 구상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하는 핵심 의도는 신기술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 기술 격차를 벌리려는 것이다.
미국과 포괄적 동맹으로, 중국과 상호존중에 기반한 동반자 관계를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는 미·중 갈등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미·중 양국은 대립과 경쟁 속에서도 상호 경제교류는 증대하고 있다. 한국이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는 국익외교를 하고 실용적 접근을 추구하므로 이를 목표로 내세우기보다는 실천적 이행이 중요하다.
국가외교는 정부 수반이 하는 것이다. 당선인이 주요 주변국에 특사나 대표단을 파견하면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미국, 중국, 일본, EU 등 주요국가에 대해 취임 후에라도 신뢰외교를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으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당분간 유보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당선인은 대외정책에 관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책 선택으로 국내여론이 통합될 수 있도록 탕평책으로 수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맞닿아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원조를 주고 있는 국가다. 북·미관계 악화에 따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강화되면 신 냉전기로의 회귀를 재촉할 수 있다. 북한이 자생력을 키워야 편중된 대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이 점에 대한 한·미간 정책조율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의 전략적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유지(peace-keeping)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를 조성해나가는(peace-making)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안인해 필자 이력
▲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박사 ▲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 ▲ 중국 베이징(北京)대, 일본 게이오(慶應)대 객원교수 ▲ 한국 국제정치학회 회장 ▲ 현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 패권의 딜레마(202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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