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를 이끌어갈 총리와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 인선이 마무리됐다.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전문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추후 발표될 예정인 금융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최상목 전 기재부 1차관까지 포함하면 말 그대로 옛 기획원과 재무부 출신 인사들이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덕수, 추경호, 김대기 세 사람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쓴 용어가 있다. 바로 ‘정통 경제관료’라는 말이다. 윤 당선인이 경제에 얼마만큼 방점을 두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당선인은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시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강조해왔다. 이런 인식에서 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도 경제통을 앉히는 포석을 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구도는 효과적으로 잘 운영되면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집중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외교 전문가인 한덕수 총리 후보자, 금융 전문가이자 국회에서 입법정책 경험이 풍부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 정책 조정과 예산통인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세 명이 서로 보완되는 경력을 가지고 있어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특히 한 후보자가 기업을 잘 이해하는 산업자원부에서, 추 후보자는 세밀한 경제·금융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기획재정부에서, 그리고 김 내정자는 상대적으로 정책 아이디어가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던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차이가 입체적이고 유연한 경제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점쳐본다. 하지만 자칫 ‘옥상옥’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낼 수도 있어 역할 분담에 대한 세밀한 조율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현장 사령관인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경제관료들이 두텁게 낙점되는 상황에서 총리 후보는 국민 통합 메시지를 주는 비경제 인사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점과 민간 경제의 활력 강화를 중시하는 정부답게 유능한 기업인을 중요 포스트에 배치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후자의 문제는 앞으로 새롭게 짜일 민관합동위원회에서 민간의 참여와 발언권이 실효성 있게 허용된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를 들여다봐도 많은 과제가 쌓여 있다. 당장은 팬데믹의 터널에서 안정적으로 빠져나가 보건 위기를 매듭지으면서 경제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아야 하는 큰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저기에 정책적 딜레마가 있다는 데 있다. 10년 3개월 만에 4%대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금리 인상을 부추기고 있지만, 경기와 가계 부채에 줄 부담이 걱정거리다. 팬데믹으로 피해가 큰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필요할 때 경기 부양을 위해 쓸 재정의 ‘총알’은 50%를 넘어선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때문에 절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펴낸 <격변과 균형>에서 “정상화는 팬데믹 이전으로 거시경제 상황을 되돌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돈이 풀린 만큼 정상화로 가는 길이 이전보다 더 험난하고 불확실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안전띠를 단단히 매라는 주문이다. 결국 경험해보지 못한 고난도 위기인 만큼 익숙한 관행을 넘어서는 창의적 해법이 긴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윤석열 당선인은 역동적 혁신 성장을 한국 경제의 새 좌표로 제시해왔다. 성장동력을 재점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내기 위한 처방전이다. 하지만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8명이 집필한 <혁신의 시작>에서 언급됐듯이 우리나라는 혁신의 투입 지표인 연구개발(R&D) 지출과 교육 수준은 세계 1위지만 혁신의 산출 지표인 창의성 부문에서는 8위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제도 수준은 28위에 그치고 있다. 역동적 혁신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북돋우는 교육 개혁과 공정한 경쟁의 토양을 조성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 개혁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붉은 깃발’ ‘규제 전봇대’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돌멩이’를 없애줘 기업이 ‘사업하고 싶은 의욕’으로 마음껏 달리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짚어볼 중요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역대 정부가 규제 완화를 역설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규제 혁파를 얘기하고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규제의 입구와 출구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입구. 없애는 규제보다 새로 생기는 규제가 더 많고 까다롭다면 체감 규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양산되는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지는 신규 규제에 대한 제동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2014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정부는 금융지주 산하 은행, 증권, 카드 등 계열사들이 고객 정보를 아예 공유할 수 없게 막아버렸다. 이게 지금은 빅데이터 시대의 금융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다음으로 규제의 출구 쪽에서는 공무원의 보신주의와 비공식적 규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규제를 줄여서 생기는 이슈에 대해서는 해당 공무원을 면책해줘야 한다. 허가나 승인제를 신고제로 바꾼 뒤에도 관료의 눈총이 의식돼 ‘신고하러 가도 되느냐’고 사전에 묻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비공식적 관행도 타파해야 한다.
경제의 활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의 군살을 빼는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정부가 할 일도 적지 않다. 경쟁국이 반도체, 인공지능 등 전략 산업을 공격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데 대응해 우리도 지속적으로 국가 주도의 핵심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국제적 공조에 동참하면서 그린뉴딜에서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일도 정부 몫이다. 여기에 양극화 해소를 통해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작은 정부와 큰 정부, 다시 말해 경제정책의 오른손(보수)과 왼손(진보)을 모두 쓸 줄 아는 ‘양손잡이’ 경제 운영이 필요하다.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내정된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새 정부는 성장과 분배를 모두 강조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짜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새 경제팀은 이와 함께 양과 질, 그리고 단기와 장기의 조화를 이루길 주문하고 싶다. 한국 경제는 이젠 규모를 키워가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걸맞게 중장기적으로 질적 구조를 고도화해나가는 게 중요한 시점이 됐다. 인적 투자를 통한 생산성 제고로 꺼져가는 잠재성장률의 불씨를 되살리면서 국민의 행복과 신뢰 등 사회적 자본 수준을 끌어올려 개인 삶의 질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단기적으로 경제의 순항 기조를 유지해나가면서 긴 호흡으로 지속 가능 성장, 산업구조 전환, 저출산 대응, 재정 안정화, 연금 개혁 등 중요한 과제에서도 성과를 내줘야 한다.
끝으로 윤석열 정부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또 국민 삶의 질 제고를 위해서 반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를 한데 모으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주기를 바란다. 경청했으면 하는 조언 두 가지를 소개한다. “정치 불안은 경제 변동성의 확대라는 문제를 유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김기호 한국은행 연구위원 등) “분열된 사회는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세계 행복보고서 2020)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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