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이던 모습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대형 트럭이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스스로 멈출 수도 없고 누가 멈추게 할 수도 없는 폭주다. 국회의장 중재로 독주는 일단 멈췄지만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왜 저렇게 폭주할 수 있었는지, 무엇이 민주당을 폭주 기관차로 만들었는지는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검사의 수사권을 뺏고 기소권만 남긴다는 검수완박 법안은 민주당을 빼고 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당사자인 검찰이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제3자적 입장인 대법원, 대한변협, 한국법학교수회, 한국형사소송법학회 등 법조계와 법학계 모두 신중한 검토를 촉구하며 반대론을 편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대법원은 “검수완박 법안은 위헌이 유력하다”고까지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신중론과 반대론이 나왔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전 의원은 민주당이 정상적이라면 뼈아프게 들어 마땅할 말을 했다. 그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지고 보니 심리적 균형을 좀 잃는 것 같다”며 “강경 편집증 성향인 분들이 중심부에 진입해서 무책임한 국정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강력한 반대 여론에도 꼼수 써 가며 강행 시도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반대 여론에 움찔하기는커녕 가능한 모든 편법과 꼼수를 동원하려 했다. 국회 법사위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고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멋대로 했다. 여야 각 3명씩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원회에 국민의힘 의원 2명을 뺀 야당 몫 1명으로 친민주당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배치해 민주당이 전체 중 3분의 2를 차지하려 했다. 3분의 2가 찬성하면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은 국회의원 양심상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뒤 양 의원 대신 안건조정위원회에 배치하려 했다.
안건조정위원회는 국회 운영에서 다수당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런데 민주당은 거꾸로 국회를 다수당 뜻대로 움직이는 수단으로 악용하려 했다.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에 대해 민주당 5선 의원이자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낸 이상민 의원은 “패가망신”이라고 했다. 양향자 의원은 “경악”이라고 했다. 정의당 장태수 대변인은 “대국회 민주주의 테러”라고 했고,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민주 독재, 입법 독재”라고 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국민은 ‘반대한다’ 50%, ‘찬성한다’ 3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69%고, 반대는 20%에 그쳤다. 검수완박 법안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인 4월 중 처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체 국민은 찬성 27%, 반대 65%로 반대가 훨씬 높았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만 놓고 보면 찬성이 55%로 반대 37%보다 더 많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절반 이상이 검수완박 자체도 찬성할뿐더러 4월 중 법안 처리도 찬성하고 있다. 검수완박도, 4월 중 처리도 반대가 더 많은 전체 국민의 민심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반 여론과 달리 검수완박 찬성하는 민주당 지지층
이런 결과는 무엇을 뜻하는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하는 일이면 누가 뭐라든 지지한다는 뜻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대법원과 법학자들까지 검수완박을 반대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검수완박 독주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반대와 비판 여론을 무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 지지자들의 검수완박 강력 지지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독주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이 검수완박에서 손을 뗄 수 없게도 하고 있다. 양향자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 민주당의 그런 속사정을 말해준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내게 두 가지 이유를 말했다. 하나는 지지층마저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번에 안 하면 못 한다는 것이었다.” 지지층마저 잃어버릴 수 없기에 검수완박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지층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검수완박 독주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전체 국민의 민심과는 다르게 검수완박을 지지하고 민주당은 이런 지지층 붙잡기에만 신경 쓰는 것은 진영 정치의 반영이자 그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정치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게 진영 정치다. 진영 정치에서는 내 진영만 신경 쓰면 된다. 내 진영만 잘 유지하고 지키면 된다. 누가 뭐래도 우리 진영을 지지하는 고정층, 이른바 ‘집토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집토끼를 잘 지키고 집토끼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게 진영 정치의 본질이다.
진영 정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에서도 나타난다. 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여론 조사에서 국정 수행을 잘한다는 응답이 줄곧 40% 선에 이른다. 임기 말 대통령 지지도가 이렇게 높은 것은 역대 정권에서 없던 일이다. 이는 친문과 반문, 친민주당과 반민주당으로 진영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가 뭐래도 문재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즉 ‘우리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40%에 달한다. 이게 바로 진영 정치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민생 문제를 놔두고 검수완박에만 매달리면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한 민주당 관계자 말은 민주당 사람들 생각이 이런 일반적 관측과 다름을 보여준다. 이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낮고 어차피 ‘집토끼’로 승부를 가려야 한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검찰 개혁 법안을 포기하면 지지층의 역풍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집토끼'만 신경 쓰는 민주당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낮아서 집토끼 간 대결이 될 수밖에 없기에 중도층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전통적 지지층만 결집시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집토끼들은 검수완박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검수완박에 매달리는 게 지방선거에서도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검수완박 강행으로 ‘우리 진영’만 잘 단속하고 지키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영 정치의 셈법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 민주당의 검수완박 독주는 진영 정치가 불러온 폐해다. 검수완박을 강행할수록 지지층을 붙잡을 수 있고 그래서 지방선거에서도 유리할 것으로 보니 검수완박 독주를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이유도 없다. 그 어떤 반대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진영 정치에 기댄 사례는 검수완박만이 아니다. 2020년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강행 처리한 것도, 작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때 당헌까지 바꿔가며 대국민 약속을 어기고 후보를 공천한 것도 진영 정치에 의존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민주당이 무슨 일을 해도 진영을 뒷받침하는 40% 안팎의 공고한 지지자들이 있으니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이 진영 정치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수완박 독주 같은 민주당 독주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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