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스텝'에 카카오 그룹사의 합산 시가총액이 연초 대비 3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그룹 내 시총이 가장 높은 카카오는 같은 기간 11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안정화를 위한 긴축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카카오 계열사들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세나 긴축 기조가 둔화되기 전까지는 이들 종목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카카오와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카카오 그룹 4개 종목 시총은 연초 대비 3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1월 3일 109조6008억원이었던 합산 시총은 같은 달 6일 96조9729억원으로 떨어지며 100조원 아래로 추락했고 이달 25일에는 80조원 선도 내어주며 79조9808억원을 기록했다. 이날 종가 기준 합산 시총은 81조460억원으로 연초 대비로는 28조5548억원(26.05%) 하락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시총이 가장 많이 증발한 종목은 카카오다. 카카오 시가총액은 연초 51조423억원에서 40조2535억원으로 10조7888억원 하락했다. 다만 하락률은 21.14%로 그룹주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비율상으로 시총이 가장 많이 떨어진 종목은 카카오페이다. 카카오페이 시총은 23조2773억원에서 15조3628억원으로 34%(7조9415억원) 급락했다. 이어 카카오게임즈(-32.52%), 카카오뱅크(-26.74%) 등이 시총 하락률 상위권을 기록했다.
카카오 그룹주의 하락은 연준의 긴축 기조에서 촉발됐다. 연준은 지난해 말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으로 기준금리 인상과 빅스텝(50bp), 자이언트스텝(75bp) 등을 언급하며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금리 인상을 통해 연일 급등하고 있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안정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12월 전년 대비 7.0% 오른 CPI는 1월 7.5%, 2월 7.9%로 상승 폭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특히 3월 CPI는 8.5%로 집계되면서 40년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문제는 긴축에 따른 유동성 축소가 카카오 같은 테크주·성장주에 불리한 환경이라는 점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는 당장 실적이 나지 않는 종목에도 미래 성장 기대감으로 자금이 유입되지만 유동성이 축소되면 이들 테크주와 성장주에서 가장 먼저 자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들 종목이 기대감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상황에서 긴축 국면이 시작되면 기업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테크주이면서 성장주인 종목 주가가 긴축 국면에 급락한 대표적인 사례는 메타(옛 페이스북)다. 메타는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과 부정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하면서 주가가 연초 대비 반 토막 난 상황이다. 연초 338.54달러였던 메타 주가는 2월 2일 323달러로 횡보하다가 실적 발표 다음날 237.76달러로 급락했다. 이후에도 부진을 거듭하며 25일 종가로는 186.99달러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역시 연초 주가가 597.37달러였으나 긴축 국면에서 유의미한 실적이나 긍정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주가가 209.91달러로 급락한 상태다. 특히 19일 장 종료 후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이 발표되자 348.61달러였던 주가가 다음날 226.19달러로 39.78%(122.42달러) 급락하는 충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카카오 그룹주의 주가 바닥을 논하기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경고했다. 연준이 긴축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완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이들 테크주·성장주에 불리한 환경이 얼마나 지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경고다.
이희권 메리츠증권 광화문금융센터 지점장은 "매크로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호재로는 주가가 반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가가 고점을 찍었다는 신호가 나오지 않으면 연준의 긴축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며 "현재 주가를 바닥이라고 판단해 저가 매수를 하기보다는 CPI 등 물가 관련 지수의 정점 통과(피크아웃)를 확인한 후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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