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소규모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나면서 대형지진 징조를 미리 보이는 경우가 많다. 두 지각판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 단번에 전면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약한 부분부터 한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밑을 밀고 들어가면서 지각변동의 전조가 지상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도 국제질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기존 세력과 새로운 세력이 서로 맞부딪치기 시작할 때 두 세력판의 인접지역에서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올 큰 충돌을 예고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에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지중해를 둘러싼 패권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양 세력 간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지중해 작은 섬들에서 먼저 소규모 전투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앞으로 있을 큰 전쟁을 향한 전초전의 성격을 띠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부분 서방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고 그래서 이 전쟁은 양국 간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자유진영과 침략국인 러시아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진영 간의 세계사적 대결이라는 도덕적 관점의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심지어 이 전쟁은 선과 악 두 세력 간의 싸움이며 따라서 선이 필히 승리하는 것이 당위이며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자유진영 국가들의 의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정책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자국의 앞마당 격인 우크라이나마저 NATO에 가입하게 될 경우 자국의 완충지대가 다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된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를 방치할 경우 자국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를 경고하였으나 이를 무시하자 이에 대한 자위권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즉 러시아의 관점에서 서방국들이 동유럽 국가들을 앞세워 NATO 확장정책을 펼쳐서 러시아를 봉쇄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기에 서방국들이 현상변경 세력이고 자국은 현상유지 세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여태까지 미국 등 서방언론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현상변경 세력이고 따라서 이들이 국제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고 한 사실과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다.
모든 국제분쟁에서 당사자들의 입장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여 타협을 이루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제3자적 입장에 있는 국제사회는 이를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중재를 하는 것이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고 이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거나 현실주의를 벗어난 도덕주의 외교를 할 경우 전쟁은 더욱 장기화되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서방국들이 민간인 학살에 분개하여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지원을 하여 전쟁이 장기화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희생이 더 커지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굴종적인 조건도 수용하는 그러한 ‘나쁜 평화’를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보편적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는 그 이익을 비교해야 한다. 그래서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전쟁은 될 수 있는 한 회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유약한 평화주의자로 매도할 수 없다. 전쟁을 지원하는 서방국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러시아 진을 빼는 장기전이 좋겠지만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현장의 선량한 시민들 입장에서는 전쟁이 하루바삐 종결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두 세력판의 단층선 위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양 세력권의 힘겨루기의 대리전장이 되어 전국토가 황폐화되는 상황을 모쪼록 조속히 모면하길 바란다. 일단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영토를 상실하고 많은 민간인까지 희생당한 시점에서 타협을 하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 상 쉽지 않겠지만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조건은 현실주의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강대국과 인접한 상대적 약소국은 강대국의 의지에 반하여 자국의 권리를 다 향유하기가 어렵다. 과거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앞두고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으려는 멜로스를 침공하기 전 아테네 대표단이 한 마지막 경고는 국제정치 핵심을 잘 짚고 있다. 멜로스 대화로 알려진 그 경고 요지는 ‘강대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소국은 자신이 당할 것을 당할 뿐이다’라는 비정한 선언이다. 이 경고는 무정부 상태를 본질로 하는 국제사회에서 계속 현실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역사 속에서 증명되었다.
첫째, 국가간의 관계에서 객관적인 선악의 기준이 모호하기에 힘이 정의가 되는 편이 문제해결을 단순화한다. 도덕적 정의가 분쟁의 기준이 될 경우 상대를 척결대상으로 여겨 문제해결이 어렵고 장기화 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전쟁을 선·악 간의 대결로 간주한 전쟁, 역사적으로 종교전쟁과 같은 경우가 그 잔혹함이 가장 심각하고 기간도 장기화한 경향이 많았다.
둘째, 도덕적 기준에도 이중성이 종종 발생하는데 자국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도덕적 기준을 상대국에게는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이중기준은 전쟁을 더 쉽게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경우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 소련이 미국 인근에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3차 대전을 무릅쓰고 막았으며 쿠바 공산정부 전복을 위해 침공을 감행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셋째,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격언이 있을 만큼 도덕적이지만 비현실적 목표를 설정하거나 비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 선의로 시작한 일이 비참한 결말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가 인류는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대전도 덮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한국전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은 처음에는 내전처럼 시작했으나 결국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모두 가담한 국제적 대리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양 진영의 자존심까지 걸려 서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려다 장기전화 되면서 38선을 중심으로 전선이 교착되어 2년 이상을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을 치러야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외치고 휴전을 반대했으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 국토가 황폐화 된 이후에 개전 이전과 거의 같은 38선을 따라 휴전선이 쳐지고 전쟁이 종식되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통일 없는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3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킬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대통령에서 제거하려는 계획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3차 대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젤렌스키는 서방언론에서 영웅화되고 있으니 역사적인 아이러니이다.
한국전을 계기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대결이 강고해지는 냉전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질서는 신냉전 체제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구냉전 체제에서 한국전 이후에도 크고 작은 대리전이 많이 발생했듯이 앞으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지정학적 상황이 비슷한 우리에게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면밀히 주시하고 앞으로 그 함의를 반영하여 우리 국가전략을 짜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도 최근 자국 국익이 걸리면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유주의적 질서가 많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석학 조셉 나이 교수는 <도덕이 중요한가>라는 저서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현실과 가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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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인 독자에게 명쾌한 비유와 논거로, 머리에 쏙 들어오는 유익한 지식뿐만 아니라,나라 안밖의 상황들이 웬지 불안,걱정스런 요즘,오늘따라 더 확실히 공감되는 컬럼 내용들을 읽으면서,이런 각계전문가의 경험과 지식,혜안들이 농축된 (정치,외교적)고견들이 일선의 정책과 지도자들에게 부디 잘 참고,반영,적용돼,조국과 세계의 미래가 아직은 좀 더 평화롭고 안전하고 살만 하길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