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행정부 수반 역할을 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27일(현지시간) 가스대금을 루블로 지불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이어 러시아는 가스를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며,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하더라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리는 가스프롬의 결정이 유럽 소비자들에게 가능한 적게 영향을 미치도록 할 것"이라면서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이제 EU 이웃 국가들로부터 가스를 받는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는 폴란드와 불가리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요구한대로 루블로 결제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며 가스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이어 위원장은 "유럽 내 고객들에 가스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는 가스프롬의 발표는 가스를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러시아의 또 하나의 시도"라며 "이는 부당하고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는 가스 공급자로서 러시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폴란드와 불가리아 역시 러시아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새로운 대러시아 제재를 채택했기 때문이라며 "러시아 외의 가스 수입처를 늘리려고 여러 해 동안 노력해온 덕분에 폴란드는 에너지 위기로부터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 알렉산데르 니콜로프 불가리아 에너지 장관 역시 "대체 공급처가 있으며 EU 차원에서도 대체 경로와 공급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유럽 기업들은 러시아 국영가스업체 가즈프롬에 이미 가스대금을 루블로 결제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이날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식통은 이날 유럽 가스 수입업체 네 곳이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가스대금을 러시아 루블로 지불했으며, 10개 업체는 루블화 지불을 위해 러시아 국영은행 가즈프롬은행 계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기업들이 러시아의 요구에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탈리아의 에너지 대기업 에니가 가즈프롬은행에 루블 계좌를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연간 전체 가스 수입량의 40%를 러시아산에 의존한다.
소식통은 이어 기업들이 루블로 결제하는 안을 거절하더라도, 러시아가 이들 국가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다음 결제일인 5월 15일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EU 에너지 제재 방침이 아직 모호한 상황에서 허점을 찾아 에너지 수입을 이어가려는 시도도 있다. 독일 에너지 대기업 유니퍼는 러시아 가즈프롬은행에 유로화로 가스 대금을 지불하면, EU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은 상태로 가스 수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티나 튜오멜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분석가들의 통화에서 "(유로화 지불 등을 통해) 가스 대금 지불 절차를 개정할 경우 제재를 준수하면서도 수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주요 경제 기관들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면, 독일 경제에 입히는 피해 규모가 2200억 유로(약 293조9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6.5% 규모다.
러시아는 폴란드와 불가리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경고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 의장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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