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회장은 재임 기간 다른 전임자들보다 굵직한 '빅딜'들을 추진했다.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아시아나항공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이 회장의 지휘 아래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다만 공격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1등 기업, 혹은 경쟁 기업에 매각하는 특유의 구조조정 방식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이다. 두 회사의의 공통점은 업계 선두권인 기업이 인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에, 아시아나항공은 국적기인 대한항공으로 매각이 추진됐다. 시장 지배적 위치를 가진 기업이 인수 대상으로 결정되며 두 사례 모두 M&A 발표 직후부터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합쳐질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건조 물량 대다수가 한 기업에 쏠리는 결과가 나타난다. 글로벌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발주한 LNG 운반선은 총 78척이며 그 중 68척은 한국 조선사가 수주했다.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이 수주한 물량은 47척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인수할 경우 우리나라 국제선의 약 절반 가량을 차지하게 된다.
이 회장과 산은이 공격적인 '빅딜'에 나선 것은 산업 재편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현실적인 배경 이외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기준에 따르면 경쟁의 제한성이 인정되더라도 효율성 증대 효과가 폐해보다 더 크다면 기업결합이 허용된다. 또한 경쟁 제한성이 있더라도 합병 대상 회사가 회생이 어려운 상태라는 점이 입증된다면 예외적으로 기업결합이 허용될 수 있다. 어차피 도산 위기에 처한 곳이라면 결합 허용 여부와 관계없이 독과점이 형성될 것이라는, 이른바 '회생불가회사 항변'의 논리다. 외환위기 당시 현대차와 기아차의 기업결합에 적용됐던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공정위는 산은의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공정위 측은 지난 2월 브리핑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과 회생불가회사 항변의 관계에 대해 "변제가 불가능하고, 파산을 눈앞에 뒀다고 하면 긴급하게 승인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경우) 그런 부분에 대해 회사에서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위원회에서 논의를 했고,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기업결합을 불허한 EU 역시 '회생불가' 여부보다는 합병이 유발하는 독과점 상태가 더 문제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수장이 진두지휘하는 공격적인 구조조정 방식이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 실무진의 판단과 별개로 매각 작업이 이뤄진 측면도 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컨설팅을 통한 경영 정상화 작업이 이뤄지는 와중에 대한항공 인수 발표가 나왔다. 산은 실무진보다는 외부 자문사가 대신 움직이며 전격적으로 매각이 결정된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1등에게 2등을 몰아주는 전략이 거래 종결성이나 산업 재편 측면에서 보면 의미가 있다"며 "다만 결과를 놓고 보면 손쉬운 길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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