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빠른 주택 공급을 위해 1970~1980년대 선분양제도가 일반화했다. 이는 주택이 완공되기 전 입주자에게 분양해 이때 납부된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시공비용을 충당한다. 따라서 건설사는 건설비에 들어가는 금융비용을 절감시키기에 비교적 분양비용이 저렴해질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후분양제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택건설 공정이 거의 끝난 후 분양하기에 주택의 안전과 하자 등을 수요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공사가 중단되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 현상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건설사 입장에서도 후분양 방식의 시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기존 방식에선 선분양 당시 책정한 가격보다 원자재 비용이 높아질 경우 이 부담을 고스란히 건설사가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다시 한 번 후분양 활성화 방안으로 '후분양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2022년까지 공공 분양주택의 70%를 후분양으로 공급하고 민간에도 후분양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분양가상한제 여파로 각 정비사업장과 건설사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이후 정부는 선분양제보다 더욱 이른 시점에서 분양을 시행하는 '사전청약' 제도를 도입하며 유명무실화했다.
이런 가운데 적극적으로 후분양 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공급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다. SH는 1989년 공사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8만8416가구를 후분양으로 공급해 왔다. 지난 1월에는 더 나아가 향후 SH가 분양하는 주택에 대해 건축공정률 90% 시점에 입주자 모집 공고를 시행하기로 했다. 앞서 60~80%의 공정이 완료됐을 때 시행했던 후분양의 기준을 대폭 끌어올린 셈이다.
당시 공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체 분양주택에 대해 후분양을 시행하고 있는 기관"이라면서 "후분양 제도는 실물에 가까운 아파트를 확인해 부실공사를 방지하고 소비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등 소비자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준다"고 설명했다.
이는 특히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광주에서 잇달아 발생한 아파트 공사 사고로 후분양에 대한 여론이 높아진 탓도 있었다. 당시 김헌동 SH 사장은 "후분양을 하게 되면 광주 아이파크 같은 부실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고, 공기에 쫓겨 동절기에 무리한 공사를 하지 않는다"면서 "(SH공사가 후분양한 단지에선) 선분양 아파트와 달리 일반 시민의 피해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분양제 확대가 민간 건설사의 금융비용을 높이는 데다 당장 시장에 분양물량이 줄어든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후분양이 건설사의 재무부담을 증가시키면 분양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올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책 리스크를 우려하며 분양 물량이 줄어든 상황인 점도 복병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부동산 정책 발표 시점을 연기하면서 일반 부동산시장뿐 아니라 분양일정을 확정해야 하는 건설사들도 눈치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다음달 신규 공급 물량이 '0'일 정도로 공급가뭄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대규모 분양으로 관심을 모았던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을 비롯해 신반포15차, 홍은13구역 등 주요 정비사업 단지들의 분양 일정이 지연한 탓이다.
다만, 새 정부가 다시 후분양 제도 카드를 꺼내들지 여부도 시장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후분양에 대한 수요자들의 요구나 시장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된 데다 차기 정부가 공급 확대에 부동산정책의 방점을 찍은 만큼 정치권에선 관련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정치권에서도 후분양 활성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내 집 마련을 서두르는 수요자라면 연내 후분양으로 공급되는 단지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