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계에 부딪힌 중견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 되면 그동안 제공받던 세제·금융혜택 등 기회를 잃게 된다.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대한 적극적인 세제 지원이 없다면 기업이 성장을 포기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중견기업으로 진입하자마자 온갖 규제를 떠안기는 고질적인 불합리를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종호 한국중견기업학회장은 3일 아주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자력갱생이 가능하다고 보고 정부에서 지원을 줄이는데 이런 육성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회장은 “중소기업을 막 벗어난 기업 초기 중견기업과 중기 중견기업 중 국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찾아내 지원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로봇, 인공지능 등 10대 미래 산업 분야 중견기업을 선정해 R&D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인수합병(M&A)도 적극적으로 돕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쟁적 산업정책을 펴던 미국과 유럽이 보조금 투입 등을 통해 자국 기업들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정책으로 선회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경쟁력 강화정책의 핵심은 규모를 키우는 것인데 정부도 지원을 통해 중견기업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며 “중견기업이 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1조원 정도의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을 시 혜택을 줄이는 건 반(反) 경쟁력 강화정책”이라며 “세제·금융혜택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정책이 실현돼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가 R&D 지원체계를 혁신 중견기업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민웅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공급망 위기, 탄소 중립 이슈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해 대응할 청사진을 가지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혁신 중견기업에게 정부의 큰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지 본부장은 “중견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R&D, 고용, 금융, 판로 등 전방위적 정책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법인세·상속세, 중견기업 성장 발목잡아…중견련 “선진국 수준 개선해야”
법인세와 상속세 등 세제 인하 문제도 중견기업계의 숙원이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1.2% 보다 높다. 2009년 22% 수준에서 2018년 25%로 인상됐다. 반면 같은 시기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에 합류했다.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낮추면 시설 및 R&D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또 생산, 일자리가 늘어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직계비속에 기업을 승계할 때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60%까지 치솟는다. 대주주 주식에 대해 추가 세율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직계비속 기업승계 시 상속세 최고세율은 한국에 이어 일본 55%, 프랑스 45% 미국·영국 40% 등의 순이다. OECD 국가 중 절반 이상은 한국과 달리 직계비속에 기업을 물려줄 때 상속세율을 인하한다. 프랑스는 60%~45%, 벨기에는 80%~30%, 네덜란드는 40%~20% 등으로 상속세 최고세율을 낮춰준다.
중견련은 지난달 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OECD 상위 10개국 평균 수준으로 세제 및 규제를 개선해줄 것을 건의했다. 중견련은 “한국의 기업 제도 경쟁력은 OECD 37개국 중 26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며 “선진국 지위에 걸맞도록 상속세·법인세 등 세제와 규제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수위는 기업이 중소기업을 벗어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혜택 유지 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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