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립 경제학회 평의원, 옥스퍼트 대학 너필드 칼리지 객원 교수이자 파이낸셜 타임즈 컬럼리스트 팀 하포트는 그의 책 '어댑트(Adapt: Why Success Always Starts with Failure)'에서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팀 하포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 새로운 것을 해야 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실패를 실패로 인정할 줄 아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팀 하포트의 책 외에도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임을 주장하는 경영 관련 도서는 많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례로 증명되는 이론이니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실패를 타산지석이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경영학 이론이 건설산업에는 맞지 않는 듯하다. 특히, 안전에 관해서라면 완전히 틀린 얘기가 된다. 건설산업에서 안전사고의 대가는 크다. 기업이 입을 경제적 피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죽는다. 건설 현장 안전관리의 실패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다. 사람이 죽은 사고로부터, 그런 실패로부터 어떤 것을 배운들 그것이 건설기업의 의미 있는 경영전략이 될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NO다.
어떤 건설 사업이든 무고한 생명을 대가로 완성된 사업은 대단하지도 중요하지도 못한 사업이다. 그저, 실패한 사업일 뿐이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 현장이 경영학에서 말하는 배울 것이 있는 실패 사례라면, 최소한 지금처럼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건설산업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가 매년 전 산업 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패로부터 더 안전한 현장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건설산업에서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건 과거 대형 사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신행주대교 붕괴사고, 1994년 성수대교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은 원칙과 절차를 무시했던 대형 참사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 정도의 실패 사례면 경영학에서 말하는 반면교사의 사례로 충분하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여전히 우리는 메스컴을 통해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확인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분기에 발생한 건설사고 사망자는 5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 이런 수치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며 비판을 한다. 일어날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기에 사고를 줄이려는 사업주의 노력에 처벌이 아닌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의 보완 필요성을 제시하는 주장이나, 공포감 조성이 사고 예방에 효과적일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라면 동의할 수 있지만, 노력의 결과가 실패 즉 사망사고가 아니니 기업에 선물을 줘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망사고를 통한 건설산업의 안전관리 고도화는 필요 없다. 사전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계획과 실행 그리고 모니터링이라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부주의한 행동과 원칙의 미준수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의 결과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체계도 동반되어야 한다. 실패를 방지하려는 노력과 투자가 성공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우크라 침공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침공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이 전쟁에 승자가 있을까.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은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모두가 패자다. 건설산업도 다르지 않다. 우리, 실패로부터 건설안전의 소중함을, 중요함을 배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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