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급등한 물가가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과 주식·원자재 시장의 변동성,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 금융시스템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목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불확실한 인플레이션 전망은 금융 시장과 경제 활동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이츠는 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인해 각국 정부의 부채 수준이 매우 높아지고, 공급망 차질이 이어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며 "전쟁은 부유한 경제국들의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금리를 인상하도록 강요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경기 둔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되며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화로 몰렸다. 로이터는 9일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표시하는 달러지수가 장중 한때 104.2까지 오르며 2002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준이 물가 잡기에 나서며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상승한 미국 국채 수익률과 우크라이나 사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중국의 봉쇄 조치 등이 달러화 강세에 기여한 것으로 지목됐다. 투자자들은 경기 둔화 우려와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강대국인 미국 경제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또한, 연준이 긴축 기조로 돌아선 가운데 미국이 금리 인상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 시장 분석가 역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달러에 견고한 기반을 제공하는 세 개의 동인(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우크라이나 사태·중국 경기 둔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번 주 내에 이러한 위험 요인이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달러화 가치가 지금 당장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때 미국 달러화를 대체해 새로운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가상화폐는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약세를 보였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전일 대비 10% 이상 하락해 3만1075.70달러(약 3960만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기록한 최고가인 6만7802달러에 비하면 54% 하락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타격을 입은 증시와 가상화폐 시장이 동조하면서 비트코인의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전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로 가상화폐를 거래했지만, 기관 투자자들 등 전문 투자자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가상화폐 시장이 점점 더 전통적인 시장과 동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억만장자 가상화폐 투자자인 마이클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홀딩스 최고경영자(CEO)는 가상화폐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는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가상화폐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전까지는 나스닥과 동조할 것"이라며 "최소한 다음 몇 분기 동안은 매우 불안정하고 어려운 시장에 거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알고리즘 기반 암호화 투자 플랫폼인 머드렉스의 에둘 파텔 CEO는 비트코인이 3만 달러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간 가운데 추가 매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엘살바도르가 방금 저가 매수를 했다"며 비트코인 500개를 평균 단가 3만744달러에 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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