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00년간 읍성이 들어서며 그 위치를 공고히 하던 무안은 1897년 개항과 함께 무안부로 승격했고, 1969년 무안과 신안이 분리된 후 도청과 국제공항이 들어서며 남악 일대가 신도시로 비상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를 입증이라도 하듯 무안의 봄은 오랜 세월의 더께 위에 새로운 기운을 봄꽃처럼 피어내고 있다.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이 낙향해 지은 정자로 야트막한 둔덕 위에서 휘돌아가는 영산강을 굽어보고 있다. 시인‧묵객들의 강학 장소로 이용되던 식영정은 임연의 증손인 노촌 임상덕이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몽탄강(夢灘江)이라고 불리던 식영정 일대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까닭에 조운선이 모여들어 번성하던 포구였다. 그런 만큼 이곳은 전략적 요충이기도 했다.
몽탄강이라는 이름도 왕건과 견훤의 전투에서 전래됐다. 고려 통일 전 왕건은 견훤을 치러 이 곳까지 왔다가 도리어 포위 당해 위기에 처했다. 왕건이 전투 중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신령이 나타나 “대업을 이룰 사람이 한가하게 잠을 자고 있느냐? 지금 바닷물이 빠졌으니 어서 피신하라”고 꾸짖어 일어나보니 정말 바닷물이 빠져있어 몸을 피할 수 있었고, 왕건은 군사를 다시 정비해 파군교에서 견훤을 격파했다.
몽탄강이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꿈몽(夢)에 여울탄(灘)자를 써서 왕건이 꿈을 꾼 강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조기석 문화관광해설사는 “영산강 하구언 공사 이후 지금은 일대가 들판으로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상괭이(돌고래)들이 몰려다니던 곳.”이라며 “임진왜란 때는 명량대첩후 이순신 장군이 수영(水營)을 물리자 왜군이 이곳까지 쳐들어와 김충수 장군등이 적을 맞아 싸운 격전지였다.”고 말했다.
몽환적인 비경을 품은 영산강과 이야기가 깃든 식영정에는 해마다 노란색 카펫처럼 일대를 뒤덮던 유채꽃밭 자리에 지금은 양귀비꽃이 피어나고 있어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에 ‘쉼’을 선물하고 있다.
생태관광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상동마을 백로·왜가리 집단번식지도 들러볼 만 하다.
상동마을은 해마다 3~4월이면 동남아에서 월동한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 번식하고 10월이면 다시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착지다. 마을 앞 연못에는 4000여 수가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남쪽에서 날아 온 백로와 왜가리가 왜 이곳에 운집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이 마을주민들과 이웃이 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하얀 옷을 입은 새들의 거처는 못의 가운데에 있는 작은 숲의 나무 위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돌아가 오는 무리도 있고, 일부는 나무 아래 못으로 내려가 예의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수면 아래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주시하기도 한다.
조 해설사는 “연못 가운데 있는 섬이 명당이라 먼저 온 새들이 이곳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전망대가 따로 설치됐지만, 사람들이 해코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새들은 가까이 접근해도 관심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한 곳에서 탐조하는 것보다 연못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다양한 각도에서 새와 둥지를 조망을 할 수 있어 좋다.
색다른 볼거리로는 밀리터리테마파크도 빼놓을 수 없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옥만호 장군이 건립한 호담항공우주전시관으로 지금은 밀리터리테마파크로 이름을 바꿨다.
옥만호 장군은 6.25 동란 때 평양 근처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 참여하는 등 총 115회의 전투 출격을 달성한 호국영웅으로 1927년 9월 2일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에서 태어났다. 밀리터리테마파크가 바로 이곳에 있는 이유다.
옥만호 장군은 훗날 공군참모총장까지 승진했고, 주중대사,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야외전시장에는 18대의 실물 항공기와 전차, 장갑차 등 다양한 무기를 비롯해 그의 소장품, 전사(戰史)가 전시돼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미국 NASA와 러시아 등 세계 항공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자료도 정리돼있다. 대한민국 국군 교육, 홍보와 유격훈련, 참호 같은 체험시설이 알차게 있고 전시 장비의 규모도 커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꼭 한번 찾아볼 만하다.
삼향읍에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으니 바로 초의선사 탄생지다. 초의 대선사는 조선후기 침체된 당시의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선승으로,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이다.
깊고도 명징한 시, 서, 화를 남겨 한국문화에 깊이 각인된 초의선사는 1786년 삼향읍 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5세 때 나주시 남평에 있는 운흥사로 출가했으며 19세 때 영암 월출산에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다 큰 깨달음을 얻어 선승이 됐다.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웠으며 완당 김정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종파를 초월해 교유했다.
무안군은 1997년 5월 문화 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초의선사탄생지 현창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생가, 추모각을 복원하고 기념전시관, 차문화관, 차교육관, 차역사관, 다정(茶亭)등을 건립해 명실상부한 다인들의 다도 순례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초의선사 탄생일(음력4월5일)을 전후로 전국의 다인들이 참여하는 초의선사 탄생문화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는 폐교를 활용해 조성한 레트로 관광지다.
‘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릴 적 기억을 보듬을 필요 없이 실제와 꼭 같이 재연해 놓은 옛날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60~80년대 생활상을 재연해 놓은 이곳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초등학교의 교실풍경, 시골장터, 대장간 등 과거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실내에는 문구점에서 달고나 좌판까지 오밀조밀한 볼거리를 꾸며 놓았고,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어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레트로 관광지는 전주한옥마을을 비롯해, 군산, 용인 등 전국 여려 곳에 산재하지만, 이곳이 차별화되는 것은 다른 곳보다 규모는 작지만 전시된 내용물의 밀도가 높고, 정리가 잘돼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한 부모들이 과거로의 추억을 되새기는 곳이기도 하다.
미술이라는 장르의 첫 글자인 미(美)자(字)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안에는 ‘못난이 미술관’이 있다.
이곳을 만든 작가 김판삼 씨는 “우리 마을 슬로건은 ‘누구나 예뻐지는 못난이 마을’”이라며 “이 마을은 주민, 관광객들이 모두 함께 참여해 쓰다 남은 건축자재, 자전거 거치대 등을 이용해 미술작품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작가들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에 알맞은 재료를 구하는데, 우리 미술관의 경우 재료를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작업 프로세스와 배치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하긴 미술관의 이름이 ‘못난이’인데 창작의 절차가 거꾸로 됐다고 이상 할 것은 없는 노릇이다.
김판삼 씨는 그가 추구하고 있는 작업과 관련해 “실내 작품은 브론즈나 인조대리석을 이용하지만 실외는 스티로폼을 비롯해 버려진 생활 쓰레기가 주재료”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 절차가 거꾸로이 듯 작업의 패러다임 또한 역설적이다. ‘못난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돋보인다’는 생각으로 미술을 상대적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 같은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다. 김판삼 은 초창기에는 인체 위주의 사실주의 작품을 추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세상에 대한 반감이 일어 그 같은 생각은 ‘외모 보다는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해 보자’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는 “내 작품은 못생겼지만, 그 못난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관람객들이 웃고 돌아갈 수 있도록 쉽게 접할수 있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미술관 벽면에 적혀 있는 짧은 글 속에 함축돼있다.
무안이 내세우는 특산은 뭐니뭐니해도 낙지다. 낙지는 한때 목포, 영암 앞바다의 갯벌에서 많이 잡혔지만 금호방조제 건설 이후 수확은 무안의 갯벌에서 집중되고 있다. 다리가 가늘어 세(細)발낙지로 불리는 무안 낙지는 식감이 부드럽고, 쫄깃쫄깃한데다 씹을수록 맛이 나는 까닭에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낙지 요리집이 몰려있는 무안 공영터미널 뒷골목을 낙지골목으로 유명해져 어느 집이든 인근에서 잡은 낙지로 만든 다양한 레시피를 선보이고 있다. 제철은 겨울이지만 사시사철 언제 가도 찰진 식감과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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