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인사이드] '여기어때 무죄'로 본 '크롤링'...합법과 불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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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05-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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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 DB]

크롤링(crawling·온라인상 정보 수집 및 가공)을 둘러싼 IT업계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업계 1위인 '야놀자' 제휴 숙박업소 정보를 크롤링을 이용해 빼돌린 혐의를 받는 숙박 플랫폼 '여기어때'가 무죄를 확정받으면서 어디까지 합법이고 어디부터 불법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크롤링과 관련된 법조문은 정보통신망법 제48조에 규정된 '정보통신망 침해행위 금지' 규정이다. 해당 규정은 '누구든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넘어 정보통신망에 침입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시돼 있다.
 
'야놀자 정보 264회 무단복제' 여기어때, 왜 무죄인가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12일 정보통신망 침해 등 혐의로 기소된 심명섭 전 여기어때 대표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 전 대표와 직원들은 2016년 1~10월까지 영업에 활용할 목적으로 야놀자 모바일앱용 API 서버에 1594만회 이상 침입한 혐의(정보통신망 침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야놀자 제휴 숙박업소명이나 주소와 이용·할인 가격, 입·퇴실 시간 등 영업 관련 정보를 264회 무단 복제한 혐의(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 침해)도 있다. 이들은 검색엔진 로봇을 이용한 데이터수집 프로그램 '크롤링'을 사용해 많은 정보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보통신망 침해’ 혐의와 관련해 여기어때가 크롤링을 사용해 수집한 정보들이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공개된 정보라고 판단했다. 크롤링을 통해 수집한 정보들이 '허용된 접근 권한'을 넘어선 불법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회사가 적극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URL 주소는 모바일 앱에 나타나지 않을 뿐 이를 의도적으로 비공개하거나 숨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피고인들이 크롤링을 통해 가져간 정보들 대부분은 이용자들에게 공개한 정보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피고인들이 이 사건 모바일 앱을 통하지 않고 URL을 통해 서버에 접속했다거나 크롤링을 하고, 앱에서 제공하지 않는 명령어를 확장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들이 접근 권한이 없거나 그 권한을 넘어서 정보통신망에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들이 가지고 온 데이터 중 숙박업소 업체명, 주소, 지역, 타입 등 데이터 정도는 이미 시장에 상당 부분 알려진 정보"라며 "정보를 모으는 데는 굳이 피해자의 의사를 통하지 않더라도 큰 노력이 들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합법과 불법 사이...보호영역을 부정한 방법으로 접근했는가
크롤링 허용 범위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온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크롤링을 통한 정보통신망 침해 여부는 '허용된 접근권한'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앱이나 웹사이트가 보호하는 영역에 대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정보통신망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천규 변호사(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인천분사무소)는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초과해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부정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아이디, 비밀번호를 이용하거나 정보통신망에 대한 보호조치에 따른 제한을 면하게 하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는 등의 방법으로 침입해야 동죄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안의 경우에는 일반 이용자들도 야놀자 회사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회원 가입 없이도 자유롭게 서버에 접근할 수 있었고, 서버에 접근을 막는 별도의 보호조치도 없었던 점에서 서버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제한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침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크롤링 분쟁' 중인 쇼핑·부동산 등 플랫폼들
크롤링 분쟁은 지난 2010년 잡코리아가 사람인이 채용정보를 복제했다며 복제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처음 시작됐다. 1심부터 3심까지 법원은 "사람인이 잡코리아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잡코리아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사람인은 2018년 소송 합의금으로 잡코리아에 120억원을 지급하며 법적 분쟁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명품 쇼핑 플랫폼 캐치패션이 경쟁사인 발란, 머스트잇, 트렌비가 무단 상품 정보 크롤링으로 정보통신망을 침해했다고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허가받지 않은 상품 정보를 복제하고 상품 판매에 활용했다는 주장이다.

네이버는 지난 10일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윈중개를 상대로 '크롤링 금지'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다윈중개가 네이버 부동산의 매물 정보를 크롤링해 노출시키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이 골자다. 다윈중개는 이미 공개된 데이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개의 성격이 강한 플랫폼 업계에서 특히 크롤링 분쟁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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