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내려서 와이키키 해변으로 달려가지 않고, 다시 남쪽에 있는 하와이 섬(Big Island)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중 일부는 천문학자와 대기과학자다. 1958년 3월 미국 지질화학자 찰스 데이비드 킬링(1928~2005)이 그런 발걸음을 한 사람으로 가장 유명하다.
하와이섬 남쪽에는 해발 4169m인 마우나로아산이 있고, 산 정상 인근에 마우나로아 관측소(Mauna Loa Observatory)가 있다. 마우나로아 관측소는 찰스 킬링이 도착하기 1년 전에 설치됐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지구시스템연구소(ESRL)가 1957년 지구 대기 관측을 위해 세웠다. NOAA가 마우나로아 관측소를 세운 이유는 이곳이 지구 대기의 평균적인 이산화탄소 농도를 구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와이는 태평양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기에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도시와 공장에서 멀다. 또 마우나로아 관측소가 있는 해발 3396m 지점은 해발 고도가 높아 하와이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멀다는 장점이 있다.
찰스 킬링은 마우나로아 관측소로 달려가 그간 사람을 보내 설치해온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 장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그가 1958년 시작한 이산화탄소 농도 정밀 측정은 현대 과학의 위대한 업적이 되었다. 찰스 킬링은 마우나로아에서 얻은 데이터를 갖고 지구 대기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년 올라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는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찰스 킬링은 2005년 77세로 죽을 때까지 이 작업을 50년간 계속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흰색 건물 중 하나에는 ‘킬링 빌딩’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이 건물에는 동판이 한 개 걸려 있고,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킬링 빌딩,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찰스 데이비드 킬링 교수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이다. 그는 1958년부터 이곳에서 이산화탄소를 계속 측정하는 일을 시작했다. 동판 제작일 1997년 11월'
[사진출처:스크립스해양연구소]
동판에 그래프 하나가 보인다. 그 유명한 ‘킬링 곡선(Keeling curve)'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한 1958년부터 동판을 제작한 1997년까지 이산화탄소 농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1958년 313ppm이었으나 2013년 400ppm을 돌파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스크립스연구소 사이트를 확인했더니 가장 최근 수치는 421.42ppm이다. 증가분이 무려 108ppm이다. 이 수치는 인류에게 기후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비상경보음이 되고 있다.
찰스 킬링은 화학자로 시작했다.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53년 노스웨스턴대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손에 쥔 동료들은 대부분 석유회사에 취업했으나 찰스 킬링은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공과대로 갔다. 캘리포니아공과대의 신생 학과인 지질화학과 소속 해리슨 브라운 교수가 그를 박사후연구원으로 받아들였다.
장비를 갖고 나가 LA 시내 여러 곳에서 공기 샘플을 담아와 실험실에서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인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의 영향이 작은 빅 수(Big Sur) 캘리포니아 주립공원에 가서 실험을 했다. 킬링은 나중에 자서전 <지구를 모니터링하는 일의 보상과 벌>에서 “나는 왜 그렇게 실험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공을 들여 샘플을 얻으려 했나? 그건 그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비를 디자인하고 조립하는 걸 좋아했다”고 말한 바 있다.
측정을 해보니, 하루 중 이산화탄소 농도 패턴이 달랐다. 낮보다는 밤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다. 식물 관련 논문을 찾아 보니, 식물은 낮에는 광합성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나와 있었다. 식물과 토양의 영향 때문에 낮 시간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양이 줄어든 것이었다. 반면 밤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다.
워싱턴의 미국 기상청에는 기상 연구 담당 부서가 있었고, 부서 책임자인 해리 웩슬러가 찰스 킬링의 연구 얘기를 들었다. 웩슬러가 킬링 박사에게 워싱턴으로 오라고 했다. 1956년이었다. 킬링은 웩슬러에게 고도가 높은 대기의 이산화탄소 양을 측정하면 지구 평균적인 이산화탄소 농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미국 기상청은 이때 이미 외딴 곳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하와이섬에 새로 만든 마우나로아 기상관측소였다. 킬링은 전통적인 장비로는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 데이터가 정확히 나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겠다고 제안했다.
워싱턴에서 일을 시작했으나 근무 환경이 열악했다. 이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인근에 있는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로저 르벨 소장이 오라고 했다. 그는 스크립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미국 기상청과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두 곳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1957년 7월부터 18개월간은 ‘국제 지질물리학의 해(IGY)'였다. 정부 돈이 들어왔고, 상당한 액수가 킬링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구입하는 데 들어갔다. 킬링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미국 남극대륙 탐사기지(little America)와 마우나로아 등 네 곳에 장치를 설치했다. 마우나로아에는 1958년 3월에 사람을 보내 장치 설치를 마쳤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하와이섬으로 가서 장비를 확인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발견은 두 가지였다. 미국 화학회가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 세운 찰스 킬링 기념패는 그걸 명확히 압축해 설명한다. 찰스 킬링 사망 10년을 추모하기 위해 2015년 6월 12일에 만들어 건물벽에 붙인 기념패다. ‘킬링 커브’라는 제목 아래 미국 화학회는 “1960년까지 킬링은 두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했다. 첫 번째는 지구의 자연적인 계절적인 이산화탄소 진동을 정량적으로 측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산화탄소가 매년 증가한다는 것도 발견했다”고 적었다.
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톱니바퀴와 같았다. 울퉁불퉁했다. 5월에 수치가 가장 높았다. 이때는 마우나로아산 일대에 식물들이 새로운 잎을 틔우기 직전이었다.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기 위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전이기에 농도가 높았다. 여름이 되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떨어졌고, 가을과 겨울이 되면 수치는 높아졌다. 다음해에도 이 같은 연중 변화 패턴은 반복됐다. 지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960년 8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 측지학 및 지질물리학 연맹(IUGG) 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처음 보고했다.
그런데 두 번째 발견, 즉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건 당시 학계 일각에서 예측한 것과는 달랐다. 당시 학계는 화석연료 배출량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할 것이며, 이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보고가 나오고, 1960년대 후반이 되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 추세는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지구 기온이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찰스 킬링은 ‘킬링 곡선’에 나타난 이산화탄소 농도 관련 데이터를 얻는 데 집중했다. 그는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에는 나서지 않았다. 킬링 곡선에 나타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지구 온난화가 관련 있느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다. 킬링 곡선을 얻어내는 작업이 마냥 평탄했던 건 아니다. 그는 초기에 연구비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의회가 예산 절감을 내세워 기상청에 일기 예보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일을 줄이도록 요구함으로써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가 폐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최악 사태는 막았으나 킬링 곡선을 보면 1964년 일부가 끊어져 있다. 1964년 2월, 3월, 4월 측정값이 빠져 있다.
그가 1956년 시작한 연구는 ‘스크립스 이산화탄소 프로그램’(Scripps CO₂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2005년 사망한 뒤에는 아들 랠프 킬링 박사가 이 프로그램 책임자가 되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 사람의 끈질긴 과학자가 있었기에 오늘날 인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라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손에 쥐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찰스 데이비드 킬링은 인류 최고의 이산화탄소 전사(fighter)로 남게 되었다.
[미니 박스]
대기·천문학의 성지
하와이 섬은 세계 대기과학의 성지이나, 세계 천문학의 성지이기도 하다. 하와이섬 북쪽에 있는 마우나키아(Mauna Kea) 산이 세계 천문학의 성지다. 해발 4207미터인 마우나키아는, 이산화탄소 농도 관측을 하는 마우나로아(해발 4169미터)보다는 해발고도가 조금 높다. 남반구를 대표하는 천문대들이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있다면, 마우나키아 산 정상 인근에는 북반구를 대표하는 천문대가 즐비하다.
미국 대학교와 기관이 운영하는 천문대 외에 외국 천문대도 많다. 일본 국립천문대의 수바루 망원경(광학 망원경), 대만과 미국의 SMA(전파 망원경 간섭계), 캐나다-프랑스-하와이 망원경(캐나다, 프랑스, 하와이대학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전파망원경) 등등이다. 한국이 세운 망원경은 없고, 한국은 수년 전 JCMT 지분을 일부 사들이기는 했다. 지분을 갖고 있으면 JCMT 관측시간의 일부를 받아 사용할 수 있다.
마우나키아 산 정상 인근의 땅 넓은 지역이 ‘천문학 지역’(Astronomy Precinct)으로 지정되어 있고, 이 안에는 모두 12개 시설에 13개 망원경이 있다. 마우나키아가 세계 천문학의 성지가 된 건, 건조해서 대기 중에 물방울이 적고 연중 맑은 날이 많아, 우주 관측에 좋기 때문이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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