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숙원 사업인 '뉴롯데' 완성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내수 위주 포트폴리오가 그룹 전체에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롯데' 하면 유통을 먼저 떠올렸지만 어느덧 '화학'이 그룹 내 양대 축으로 떠올랐듯 새로운 성장엔진을 모색하겠다는 구상이다. 신규 먹거리로는 바이오와 배터리를 낙점하면서 대규모 투자도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 만나기 전 푼 '선물 보따리'··· 새 먹거리는 바이오
22일 재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전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문재인 정부 주도 행사에서 소외됐던 롯데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위상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동빈 회장이 이번 만찬 참석 명단에 포함된 배경에도 이목이 쏠린다. 재계에선 롯데가 최근 미국을 신사업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한 것과 맞닿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는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기에 앞서 잇달아 바이오·배터리 사업과 관련한 미국 투자 계획을 내놨다.
먼저 발표된 투자 계획은 롯데가 새 먹거리로 낙점한 바이오 분야였다. 롯데가 진출하려는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은 영업이익률이 20~30%에 달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롯데는 바이오 사업 첫 투자 지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롯데는 지난 13일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위치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 (Bristol-Myers Squibb·BMS)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 인수를 공식화했다. 인수 규모는 1억6000만 달러(약 2000억원)다.
시러큐스 공장 인수는 바이오 CDMO 사업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이달 지주사 산하에 자회사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신설하고 10년간 2조50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10' CDMO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19일엔 롯데케미칼이 올 상반기 중으로 미국에 배터리 소재 현지법인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 대기업 중 배터리 소재 사업으로 미국에 진출하는 기업은 롯데케미칼이 처음이다. 2030년까지 배터리 소재 사업에 4조원을 투자하는데, 이 중 60%가량을 미국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롯데 행보를 보면 신 회장의 위기의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롯데그룹은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유통 계열사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적이 악화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유통 부문 핵심인 롯데쇼핑은 2019년 연간 427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076억원으로 2년 만에 반 토막 났다. 내수 소매 유통업을 중심으로 한 롯데 사업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업 무게추도 옮겨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연간 기준 처음으로 롯데쇼핑 매출을 뛰어넘었다. 지난해 롯데케미칼 매출액은 18조1205억원으로 롯데쇼핑(15조5736억원)에 비해 2조5469억원을 더 벌어들였고,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이미 롯데케미칼이 2017년에 롯데쇼핑을 제쳤다.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 영업이익이 롯데쇼핑(2076억원) 대비 7배 수준인 1조5356억원에 이른다.
코로나19 이후 롯데는 삼성·LG 등 국내 4대 기업에 비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소극적이란 지적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롯데 신동빈호(號) 분위기가 반전됐다. "현 사업 포트폴리오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공격경영’으로 뱃머리를 튼 모양새다. 신 회장이 올 상반기 사장단회의(VCM)에서 "새로운 시장과 고객 창출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며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자"고 강조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그동안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식품‧유통‧케미컬 등 사업군에 한정돼 그룹 성장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며 "하지만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사업이 기존 사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낸다면 장기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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