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봉쇄령에 따른 공급망 균열로 중국 자동차 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서도, 중국 전기차 왕 비야디(比亞迪, BYD)는 줄곧 자신감을 내비쳐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나 보다. 비야디의 자신감은 5월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비야디가 2일 공개한 5월 판매량 수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5월에만 모두 11만4943대의 전기차를 팔았다. 전년 동기 대비 2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사상 첫 월 11만대 판매 돌파 기록도 세웠다. 3개월 연속 10만대 이상 판매 행진을 이어가며 올 들어 5월까지 누적 판매대수는 전년 동비 350% 급증한 50만7314대에 달했다.
덕분에 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선전거래소에서 최근 한 달 새 주가 상승폭만 약 35%에 달했다. 시가총액도 8000억 위안을 돌파하며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는 테슬라, 도요타에 이은 시총 3대 기업으로 우뚝 섰다. 비야디에 추월당한 폭스바겐은 4위로 물러났다.
과거 왕촨푸(王傳福) 비야디 창업주가 벤처기업인들에게 한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 자동차 업계가 분석하는 비야디의 남다른 성공 비결을 네 가지로 요약해본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올 초부터 중국 내 코로나19가 산발적으로 재확산되면서 지린성을 비롯한 동북 3성과 상하이·창장삼각주 지역을 강타했다.특히 상하이와 지린성 창춘은 중국에서 '자동차 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중국 양대 국유 완성차 공룡인 상하이자동차와 이치자동차 본사가 각각 소재한 이곳은 중국 전국 자동차 생산량의 약 11%를 차지한다. 4~5월 중국 대다수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공급에 차질을 빚게 된 배경이다.
상하이에 공장을 둔 미국 전기차 테슬라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봉쇄로 3주 간 조업이 중단돼 이 기간 약 5만대를 생산하지 못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반면, 비야디는 전국 곳곳에서 공장을 돌리는 만큼 코로나 봉쇄 충격이 덜했다. 광둥성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는 선전뿐만 아니라 산시성 시안, 후난성 창사, 장쑤성 창저우, 장시성 푸저우, 산둥성 지난, 안후이성 허페이, 허난성 정저우 등 전국적으로 9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생산력이 분산돼 코로나19 발발 불확실성에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핵심기술을 손아귀에 꽉 쥐어라”
최근 중국 내 코로나 봉쇄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자동차 공급망은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자동차 공급망에서 부품 한 개라도 없으면 완성차를 만들 수 없다.왕촨푸 회장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공급망 완비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자체 핵심 기술에 기반한 비야디의 공급망 생태계 건설에 주력해왔다.
미국 특허정보 전문업체 IFI클레임스(IFI CLAIMS)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비야디의 글로벌 특허 취득건수는 1만2246건으로, 중국 자동차 기업 중 1위다. 지난해 비야디는 연구개발(R&D) 부문 투자액이 100억 위안을 첫 돌파했다.
“배터리도 만들고, 자동차 모터와 전자제어장치도 모두 만들 수 있는 자동차 기업은 비야디뿐이다.” 왕촨푸 회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특히 몇몇 전기차 핵심 기술 방면에서 비야디 영향력은 막강하다. 블레이드배터리, DM-i 슈퍼하이브리드 시스템, 셀투바디(CTB, cell to body) 기술, 전력반도체 IGBT(절연게이트양극성트랜지스터)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비야디는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중 유일하게 IGBT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비야디는 IGBT 부문을 따로 떼내 상장시킬 계획도 추진 중이다.
비야디가 독자 개발한 블레이드(중국명:刀片) 배터리의 경우, 칼날처럼 얇은 셀을 결합해 배터리 모듈을 생략하고 곧바로 배터리팩으로 만드는 기술로,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야디는 배터리 방면서 글로벌 배터리왕인 닝더스다이(CATL)도 바짝 뒤쫓고 있다.
지난달 11일 중국자동차동력배터리산업혁신연맹 발표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비야디는 2위를 차지했다. 배터리 탑재량 14.68GWh으로 시장 점유율 22.7%를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점유율이 9%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반면, 중국 배터리왕 CATL은 비록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47.39%로 전년 동비 3%포인트 하락했다.
“다다익선, 인해전술로 공략하라”
비야디의 자동차 제품 라인업은 워낙 광범위하다. 가격대도 10만 위안부터 150만 위안까지 천차만별이고, 타깃 연령층도 골고루 분포돼 있다. 올해 3월 비야디는 전 세계 완성차 업체 중 최초로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했다고 선언한 이후 전기차 제품 라인업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비야디 차종은 크게 ‘클래식’을 선호하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왕조(王朝), 젊은 층을 겨냥한 해양(海洋), 고급차를 지향하는 독일 다임러벤츠와의 전기차 합작 브랜드 텅스(騰勢·덴자), 그리고 최상단의 프리미엄 고급차 싱지(星际)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각 시리즈는 가격대나 크기, 차종별로 더 세밀하게 나뉜다. 왕조 시리즈는 중고가 중형 세단·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인 한(漢)·탕(唐), 그리고 중저가 컴팩트형 승용차·SUV 모델인 친(秦)·쑹(宋)·위안(元) 브랜드로 세분화된다.
해양 시리즈는 해양생물과 군함 시리즈로 나뉘는데, 해양생물은 하이바오(海豹·바다표범), 하이둔(海豚·돌고래), 하이스(海狮·바다사자), 하이어우(海鸥·갈매기) 등으로, 군함시리즈는 구축함(A급 세단), 순양함(SUV), 상륙함(MPV) 등으로 구분된다.
이밖에 프리미엄 고급차 브랜드 싱지는 비야디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협력해 만들었다. 첫 출시 모델은 벤츠의 'G클래스'를 겨냥한 고급형 SUV로, 가격대는 최고 150만 위안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이처럼 비야디 전기차 라인업은 워낙 다양해서 시장서 잘 나가는 스타급 모델도 여럿이다. 전기차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전기차 모델 톱20에 쑹 프로·플러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친 플러스 PHEV, 하이둔, 한 순수전기차(EV) 등 비야디 전기차 모델 7종이 포함됐다.
5월 비야디 창사 공장이 오염물질 배출 논란으로, 하이둔 모델 인도량이 4월보다 5600대 이상 크게 줄었지만, 다른 제품군이 뒷받침된 덕분에 전체 판매량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기업의 최대 자산은 사람이다”
왕촨푸 회장은 "인재가 뒷받침돼야 어떤 적수가 와도 전쟁에서 차분하고 느긋할 수 있는(氣定神閑) 장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매년 대졸자 채용 시즌만 되면 전국 캠퍼스를 순회하며 전기차 배터리 전문 우수 졸업생을 선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전부터 직원 스톡옵션제도 시행하고 있다. 올해는 18억 위안 규모 자사주를 매입해 직원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다.
특히 비야디 성공의 양 날개라 불리는 핵심 부처, 연구개발센터와 마케팅부는 왕 회장이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중간 관리층을 없애 의사 전달 과정에서 시간차·정보차를 없애기 위함이다. 비야디는 R&D 인력만 4만명 이상으로, 전체 직원의 4분의1 수준에 달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