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가뜩이나 힘든데...곡물 가격 급등에 중기·소상공인 '삼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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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기자
입력 2022-06-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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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물가 2년새 70% 가격 인상...상인들 "장사 못 하겠다"

  • 식품제조中企 10곳 중 8곳 "곡물가 급등으로 경영 악화"

  • "정부, 밥상 물가 안정 대책 마련 시급"

밀[사진=픽사베이]


“코로나 때보다 더 버티기 힘들어요. 밀가루 가격이 70% 이상 올랐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서울 동작구 인근에서 40년째 빵집을 운영해 온 사장 윤모(66)씨가 한 말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밀가룻값이 30% 이상 오르더니 올해는 40% 가까이 올라 4만원대까지 치솟았다. 밀가루 가격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달걀이나 밀, 식용유 가격까지 말도 안 되게 올라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호소했다.

급등한 물가를 소비자 단가에 반영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윤 씨는 “우리 같이 소규모 동네 빵집에서 가격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손님들이 단번에 알아보고 다들 프랜차이즈로 발길을 돌려버린다”면서 “가뜩이나 방역이 완화되면서 손님도 계속 줄고 있는데, 가격까지 올려버리면 오던 손님도 뚝 떨어질 판”이라고 했다.

치솟는 곡물가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매출 회복은 더디기만 한데 최근 육류, 채소를 넘어 곡물 가격까지 급등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의 여파로 곡물가격 인상이 당분간 지속되는 것은 물론 최저임금 인상까지 앞두고 있어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제과·제빵업계가 곡물가격 인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곡물과 함께 빵 제조 과정에서 주요 식자재로 분류되는 호두, 건포도, 버터, 식용유 등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다.

경기도 양주에서 제과·제빵 중소 제조업을 운영 중인 이모(62세)씨는 “대형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밀가루 공장까지 확보하고 있어 가격 인상 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사재기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빵 제조에 들어가는 밀가루 가격이 올해 20kg당 4만원에서 더 치솟을 거란 얘기가 나오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밀가루 가격 상승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겹치며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해서다. 지난달 수입 밀 t당 가격은 402달러로, 밀 수입단가가 40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t당 가격은 전월보다 8.8% 급등한 것이자 2008년 12월(406달러) 이후 13년 3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다. 1년 전 동월과 비교하면 41.4%,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보다는 54.3% 각각 상승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국제 물류난으로 밀가루 등 곡물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국내 업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사료용 밀을 수입하고 있다.

부산에서 마라탕 집을 운영하는 김모(33)씨는 “우크라이나 해바라기유가 유통이 안 돼서 최근 콩기름으로 대처하고 있는데 곡물가가 오르며 콩기름 가격도 3만원 이상 급증했다”며 “업자 말로는 앞으로 8만원까지 인상될 걸 감안하라는데 그렇게 되면 영업할수록 적자인 구조라 영업을 이어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0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 식용유 판매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소기업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12일부터 23일까지 213개 식품제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식품제조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이 곡물가 급등으로 경영 여건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따르면 식품제조 중소기업 82.6%가 최근 국제 곡물가 급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했다고 밝혔다. 이 중 37.6%는 매우악화, 45.1%는 다소 악화했다고 응답했다.

이로인해 응답기업 73.7%가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이 중 26.3%는 20% 이상 감소, 23.9%는 20%미만에서 10% 이상, 23.5%는 10%미만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원재료가격은 전년 대비 ‘10%이상 20%미만’ 증가할 것이란 응답이 36.2%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4곳 중 1곳 이상이 30%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식품제조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이 곡물가 급등으로 경영 여건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하지만 제품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원가 증가분보다 적게 인상하거나 계획이 없는 기업이 73.2%로 조사됐다. 이 중 ‘당장계획 없으나 단가급등 지속 시 인상고려’는 35.7%, ‘원가 증가분보다 적은 수준으로 인상할 계획’ 23.9%, ‘특별한 인상 계획이 없다’는 13.6%다.

인상계획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타사 대비 경쟁력 하락 우려(58.6%)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납품처와의 관계 악화 우려(24.1%) △경영 여건상 감내 가능(17.2%)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올해 수입곡물 수급전망에 대해서는 71.4%가 원활하지 않다고 응답했으나, 국산곡물로 교체할 계획이 있는 기업은 13.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산 곡물로 교체계획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국산 원재료 가격이 높아 교체가 어려움(58.7%)’이 꼽혔다. 이외 ‘대량납품 불가 등 수급문제(22.8%)’, ‘원료 원산지·배합 변경 시 품질유지 어려움(10.9%)’ 순으로 조사됐다.

현재 가장 필요한 정부 정책(복수응답)으로는 전체의 49.8%가 △식품원료구매자금 지원확대를 꼽았다. 이어 △조기공매 등 비축물량 방출 통한 시장안정(47.9%) △TRQ물량 확대 등 고정운용 및 비축량 확대(40.4%) △농산물 의제매입세액 공제율 상향조정 필요(16.9%) 순으로 응답했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치솟는 원재료 가격에도 불구하고 제품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중소식품제조업체의 고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식품원료구매자금 지원요건 완화 및 농산물의제매입세액 공제율 상향 등 식품중소제조기업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과 더불어 TRQ물량 확대 및 비축물량 방출을 통한 원자재 수급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수입 밀 가격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분기 곡물 수입단가지수가 식용 158.5, 사료용 163.1로 전 분기 대비 10.4%, 13.6%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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