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을 이끌 양대 금융당국 수장 진용이 갖춰졌다. 금융감독원 설립 이래 첫 검찰 출신인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과 더불어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이르면 이달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식 선임될 예정이다. 가뜩이나 불확실성 높은 금융시장의 파고 속에서 사상 유래없는 경제관료와 검찰 출신 간 ‘호흡’이 얼마나 잘 맞을지, 앞으로의 금융정책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이날부터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로 출근해 금융권 주요 현안과 각 부서별 업무 파악에 나서는 한편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 구체적인 청문회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이르면 이달 중하순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 지연으로 김 후보자의 청문 일정과 임명이 지연될 가능성도 함께 나오고 있다.
김주현 후보자는 공식 취임 이후 당분간 가계부채 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국내 가계신용 잔액은 1859조4000억원으로 1900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역대급 저금리 기조를 벗어나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막대한 가계빚에 대한 부실 우려가 큰 상황. 해당 리스크는 자칫 금융권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어 금융당국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이에 김 후보자 역시 전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시장의 불안은 글로벌 금융위기 및 코로나 상황에 따른 정책대응 후유증과 국제정치적 구도변화에 따른 파급영향이 복합돼 발생하고 있다”면서 “필요한 미세 조정은 하겠지만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를 기본으로 하는 가계부채 안정화 정책은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정부 공약에 따른 소상공인 지원과 오는 9월 도래하는 코로나 대출 지원 종료에 대해서도 연착륙 방안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앞서 현 정부 인수위가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에 대한 다양한 금융지원 방안을 금융당국에 주문했던 만큼 김 후보자는 담보 및 보증 대출, 부실 우려 채권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긴급구제식 채무 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대환 보증 등 맞춤형 금융 공급 확대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급변하는 금융산업 트렌드에 발맞춘 규제 혁파 방안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타당하지 않은 규제는 모두 풀고 필요하다면 ‘금산 분리’ 같은 기본 원칙까지도 보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김 후보자의 시각이다. BTS(방탄소년단)와 드라마 대장금 등을 거론한 김 후보자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금융회사가 나오는 것이 개인적 희망”이라면서 “변화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오면 좋겠다는 측면에서 금융규제 개혁을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그간 여의도 안팎에서 ‘금융검찰’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금감원은 실제 '특수통' 검찰 출신인 이복현 금감원장을 수장으로 맞게 되면서 금융범죄 엄단 차원에서 검사와 제재에 강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의 부활과 맞물려 이 원장의 친정인 ‘검찰’과 금감원 간 금융범죄 수사 공조가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사상 유래 없는 검찰 출신 금감원장 선임에는 증권‧금융범죄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높다. 대통령실은 이 원장 선임 배경에 대해 "서울 중앙지검에서 경제범죄형사 부장을 지냈고 검찰 재직 시절 굵직한 경제사건을 맡으면서 경제정의를 실현한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에서의 준법 경영 환경을 조성할 적임자"라는 설명을 내놨다. 가뜩이나 최근 금융권에 대형 횡령사건 등 내부통제 리스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가운데 이 신임 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금융시장 교란 행위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며 불공정거래 근절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또한 전 정부 시절 최대 이슈였던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재조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첫 출근에 나선 이 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라임·옵티머스 재조사 가능성에 대해 “개별 사모펀드 사건들은 이미 종결돼 넘어간 것으로 안다”면서도 “사회 일각에서 여러 가지 문제 제기가 되고 있는 만큼 시스템을 통해 볼 여지가 있는지는 점검해 보겠다”며 재조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 원장은 금융위와 함께 가계부채 관리에 대해서도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부채와 관련해 타 금융당국과 고민이 비슷하다"면서 "금감원장으로 오자마자 가계부채 지표를 들여다봤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은행이나 중소서민금융 등 각 분야별로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금융위와 협의해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검찰 출신', '코드/편중인사', '비금융전문가'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도 이 원장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검찰 출신 인사들의 요직 등용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이 원장의 금감원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도 뒤늦게 가중되고 있다. 대학 시절 경제학을 전공하고 검사 시절 금융·재계범죄를 다뤘지만 금융정책이나 감독정책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다. 이에 이 원장은 "(금감원 내에) 분야별 전문가들이 계시고 금융위와도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면서 "최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반영하려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다소 이례적인 전통 금융관료와 검찰 출신 수장 간 조합 속 금융위와 금감원 간 손발이 잘 맞을지 여부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금리 인상기와 엔데믹(Endemic)에 따른 코로나대출 종료 시점과 맞물려 안정감 있고 섬세한 금융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장 혼란 최소화를 위해서는 정책당국과 감독당국 간 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학력(서울대 경제학과 김주현 77학번, 이복현 91학번)을 제외하고 접점이 많지 않던 두 수장이 이같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라인 막내'로 통하는 실세 금감원장의 등장으로 금감원 조직의 위상이 높아지는 반면 상급기관에 해당하는 금융위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실세 금감원장이 등장할 때마다 금융당국 간 엇박자,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대 금융당국 간 기류를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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