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아침 경쾌한 목소리로 우리를 깨우던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지난 8일 향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팬들과 소통해왔던 그는 대중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과 동료 연예인에게도 좋은 방송인이자 어른으로 존경받아왔던 바.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온 세상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더는 그와 일요일 아침을 함께하지 못하겠지만 송해가 남긴 숱한 추억과 따뜻한 마음은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를 떠나보내며 그와 함께한 추억과 이모저모를 모아보았다.
◆ 노래부터 코미디까지···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
1927년 4월생인 송해는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로 불린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타고난 끼로 동네에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1949년 황해도 해주 예술전문학교에 만 22세의 나이로 입학해 성악을 공부했다.
한국 전쟁 때 월남해 '창공 악극단'에서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본명인 '송복희'라는 이름을 뒤로하고 '송해'라는 예명으로 연예인으로서 새롭게 태어난다. '송해'라는 이름은 실향민으로서 바닷길을 건넌 기억을 떠올려 '바다 해(海)'자를 썼다는 후문이다. 무대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도맡았던 그는 자연스레 MC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능수능란한 화술과 유머로 코미디언으로도 활약했다.
송해는 라디오 DJ로도 명성을 드높였다. 뛰어난 입담을 자랑한 그는 동양 방송에서 매일 아침 AM 라디오 채널을 통해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을 맡았다. 이때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하여 그 제보를 활용한 시스템은 현재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서 쓰이고 있다고. 17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한 송해는 아들의 교통사고 이후 충격으로 1986년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충격과 슬픔을 잊기 위해 참여한 프로그램이 KBS1 '전국노래자랑'이다. 1988년 5월 사회를 맡아 약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 4월에는 9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음악을 향한 송해의 사랑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총 12장의 음반을 발표할 정도로 출중한 노래 실력을 자랑한 그는 2011년에도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열 정도로 무대에 '진심'이었다. 올해 1월에는 설 연휴 송해의 인생사를 담은 트로트 뮤지컬 KBS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내 인생 딩동댕' 등을 부르며 시청자들에게 추억을 선물했다.
지난해 11월 MC, 가수, 희극인으로서 전 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송해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개봉했다.
영화 개봉 당시 송해는 "처음에는 영화 출연을 거절했었다. 방송과 공연을 통해서만 대중과 만나기 때문에 마다했지만, 감독님과 제작진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과 (영화를 찍어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고민하게 됐다"라며 4개월간 고민했으나 윤재호 감독의 정성과 진심으로 출연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송해 1927'는 송해의 역사와 그의 따뜻한 진심이 깃들어 있었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5527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었다.
◆ 영원한 '일요일의 남자'···송해와 '전국 노래자랑'
송해는 1988년 5월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약 35년간 사회를 맡았던 KBS1 '전국 노래자랑'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다. 약 3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팬들과 만나 왔고 직접 소통해왔다. 친근하고 유쾌하게 시청자들에게 다가서며 '일요일의 남자' '영원한 송해 오빠'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꾸준히 프로그램에 임했고 많은 방송인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KBS2 '대화의 희열' 등 프로그램을 통해 "생애 마지막 '전국 노래자랑'은 나의 고향 황해도 재령군이나 학업에 임했던 해주시에서 치르고 싶다"라는 바람을 내비쳐왔다. MBN 특집프로그램 '송해야 고향 가자'(2019)를 통해 고향 황해도 재령군 방문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당시 남북관계가 틀어지며 남북체육 교류협회 경기가 9월 말로 연기되고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며 방북이 어려워졌다.
코로나19로 '일요일의 남자'를 만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2020년 3월부터 '전국 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중단된 것이다. 그러나 송해는 팬들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며 적극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스튜디오 촬영으로 특별 방송을 진행했다.
송해는 지난 1월 건강 악화로 병원 입원을 반복했고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 그는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전국 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KBS 측은 송해 '하차설'과 관련해 당시 "(송해) 선생님의 하차는 정해진 바가 없다. 그와 끝까지 함께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스튜디오 녹화 등 여러 가지 사안을 검토 중"이라며 밝힌 바 있다.
'전국 노래자랑'을 향한 송해와 제작진의 열정으로 프로그램 제작은 계속되었다. 지난 5월에는 2년여 만에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서 '전국 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재개되었으나 송해의 건강 문제로 '일요일의 남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송해에게 '전국 노래자랑'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송해 1927' 개봉 당시 그는 취재진에게 "저보다 더 아픔을 가진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위로를 드릴까 늘 고민한다. '전국 노래자랑'을 통해 제가 공부하는 게 더 많다. 제가 그렇듯 여러분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 "안녕, 일요일의 남자"···방송가가 추억하는 송해
성실하게 프로그램에 임하고 남다른 책임감을 가졌던 방송인이자 이 시대의 어른이었던 송해. 그의 사망 소식은 방송가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송해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며 그를 추억하고 진심으로 추모했다.
방송 관계자 A씨는 "오며 가며 인사만 드린 정도였지만 송해 선생님은 제게 큰 어른이셨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일요일' 하면 떠오르는 분이셨다. 방송 일을 하기 시작하며 더욱 존경심이 들었고 제 마음속 '어른'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께서 건강상의 문제로 '전국 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가슴이 덜컥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다니 마음이 아프다. 방송계 일원으로 늘 존경했고 귀감이 되었다"라며 고인에 대한 마음을 터놓았다.
가요 관계자 J씨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던 장수 프로그램 '전국 노래자랑'의 얼굴이자 최고령 현역 MC인 송해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였다. 검소하지만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계셨고 따뜻한 마음과 진심을 전하고자 애쓰셨다. 그런 모습에 대중에게도 오래도록 사랑받은 게 아닐까 싶다. 가요계 후배들에게도 늘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짧았지만 송해 선생님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의 장례는 대한민국 방송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되며 8일 오후부터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10일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