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쌍용차, '카플레이션' 승부수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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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기자
입력 2022-06-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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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6년, 일본 바둑계를 호령하던 조치훈 9단은 서열 1위 기성전(棋聖戰)에서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도전을 받았다. 당시 일본 바둑계는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와 진배없어 기성전이 곧 세계 바둑 1위 결정전이었다. 그러나 조 9단은 방어전을 코앞에 두고 두 다리와 왼손이 골절되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전치 6개월의 중상이었지만 조 9단은 “바둑을 둘 수 있는 오른손과 머리가 멀쩡한 것은 하늘이 나에게 바둑을 두라는 뜻”이라며 방어전을 강행했다. 그렇게 전대미문의 휠체어 대국이 성사됐고, 조 9단은 2-4로 두 판이나 승리를 가져오는 투혼을 발휘했다. 1835년 피를 쏟고 두었다는 ‘토혈국’에 버금간 바둑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다.

최근 재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쌍용차도 그때 조 9단의 심정과 비슷할까.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부터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서 있다.

쌍용차는 조만간 ‘토레스’를 출시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신차 출시다. 이달 사전계약을 받아 늦어도 7월에는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과거 쌍용차의 정체성을 대표한 ‘무쏘’의 후속작을 표방하고 있다.

아직 토레스의 상세한 제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국내 중형 SUV 시장을 장악한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와의 경쟁 구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토레스가 시장에 없어 못 파는 하이브리드 트림을 띄운다면 흥행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겠지만 하이브리드 추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다수 전문가는 쌍용차가 토레스의 가격경쟁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흥행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반대로 경쟁 모델과 비슷한 가격대로 승부한다면 참패가 빤하다는 시선이다. 2016년 출시한 르노코리아차 ‘QM6’가 여전히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유도 높은 가성비가 주효하다.

최근의 ‘카플레이션’ 흐름을 살펴보면 가격경쟁력은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 모두가 차량 가격을 올리는 마당에 가격을 내리는 역발상 마케팅은 시장의 관심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차와 기아처럼 부품공급망의 수직계열화가 뒷받침되지 않아 원가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래도 판매 증대가 최우선이라면 가격경쟁력 극대화라는 승부수를 던지고 볼 일이다. 지금은 최대 이익을 따지기보다 판매가 우선이라는 대명제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십분 활용하는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가 해외 시장의 효율적인 물량 배분 탓에 국내 출고에 어려움을 겪는 점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해야겠다.

쌍용차의 첫 번째 전기차 ‘코란도 이모션’도 다음 수를 빨리 찾아봐야 한다. 코란도 이모션은 사전계약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지만 배터리 공급이 막히면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전기 SUV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재매각 절차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생산 재개를 서둘러야겠다. 차후 ‘렉스턴’ 등 타 모델의 전동화 전환도 적극 검토하고 볼 일이다. 해외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국내에서 사례가 드문 위탁생산 역시 수지타산만 맞는다면 시도해볼 수 있다.

쌍용차 내부에서도 회생 해법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후일을 도모할 퇴각로가 완전히 끊어졌다. 짜낼 수 있는 재원은 모조리 짜내는 혼신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노조가 최대 2년 무급휴업 자구안을 꺼내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말 필요하다면 그 성역도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한다. 조 9단이 목숨을 걸고 둔 바둑 기보가 지금도 선명한 것처럼, 쌍용차가 진정성을 다할 때 그 회생 투혼은 자연스럽게 빛을 발할 것이다.
 

조치훈 9단(오른쪽)이 1986년 1월 일본 서열 1위 기전 기성전 도전 7번기 1국에서 휠체어에 앉아 첫 수를 두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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