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란 써보면 참 재미있는 거요. 옆에 어떤 색을 가져와야 이 색도 살고, 또 이 색도 살고...또 그림이란 게 그래요. 음악의 경우와 심포니 같은 걸 들으면, 멜로디가 흐르다가 갑자기 ‘자자자 잔~’하지요. 그림도 이렇게 보는 사람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시각예술이니까 입하고 귀하고는 상관없고, 그러니까 색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색채는 균형과 하모니를 이루도록 구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주 세밀하게 계산을 해낼 수는 없지만...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故) 유영국 화백의 '색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문득 가족이 떠올랐다. 서로를 살게 하는 가족의 품처럼 그의 색은 따뜻했다.
국제갤러리는 9일부터 오는 8월 2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K2·K3 전관에서 개최한다.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2018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유영국의 주요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특히 다채로운 추상미술과 조형 실험의 궤적을 중심으로 시기별 대표 회화작품 68점, 드로잉 21점, 그리고 추상 작업의 일환이자 새로운 기법과 시도를 보여주는 1942년 사진 작품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기록 보관) 등으로 구성됐다.
작가 유영국뿐만 아니라 인간 유영국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게스트 큐레이터(특별 전시 기획자)를 맡은 이용우 홍콩중문대학 문화연구학과 교수는 9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유영국 작가 서거 20주년 전시인 만큼, 작가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색에 중점을 맞췄다”라며 “작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 있도록, 가족사 및 생애사를 엿볼 수 있는 사진 등을 함께 전시했다”라고 설명했다.
유영국 화백의 아들인 유진 유영국 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림을 보면 아버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라며 “아버지의 작품이 요즘과 잘 맞는 것 같다. 아버지는 긍정적인 자세와 미래에 관한 희망을 품고 계셨다”라고 말해다.
둘째 딸인 유자야 유영국 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아버지 그림을 어디 가면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라며 “이전까지 보여드리지 못했던 그림도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20주기 회고전에 걸맞은 대규모 전시다. K1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및 초기작을 중심으로 유영국 세계관의 쇼케이스를 보여준다. 그중 창을 통해 삼청동 풍경이 보이는 앞쪽 전시장은 유영국의 색채 실험과 조형언어를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대표작들로 꾸려진다. 안쪽에 있는 전시장은 고유의 색채와 추상 구도를 통해 독자적 미학과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한 1950년대 및 1960년대 초중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이 공간에서는 특히 자연의 요소를 추상적 형태로 변환해 더욱 단순화된 형태와 유화의 재질감(마티에르)을 살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이자 동시에 아버지였던 유영국은 양조장 사업 등을 하며 가장 역할을 했다. 가족은 부담을 나눴다. 김기순 여사의 지지와 도움을 받은 유 작가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하루를 전부 작업에 쏟아부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도 없이 매일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K2에서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집요하게 천착해온 점, 선, 면, 형, 색이라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가 완숙기에 이르러 색채와 구도의 완급을 통해 자연의 원형적 색감을 심상으로 환기시키는 추상 조형작들을 중심으로,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서사적이고, 균형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후기 작품들이 선보인다.
K2의 2층은 1942년 경주 사진 연작 및 다양한 드로잉, 작가 활동 아카이브 사료로 구성되며, 그간 작가가 끊임없이 구축해온 조형 언어와 다양한 시도를 담은 밑그림,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구축된 자연 추상의 세계관을 다양한 화폭으로 담아낸 회화들이 자리한다.
1970년대 후반 심장박동기를 달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의 회귀를 반복한 작가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그린 회화들은 인생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색은 현대적이다. K3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후반 및 1970년대 초기작이 소개된다. 어떤 단체의 활동에도 가담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절제된 감정과 순수한 조형에의 창발적 의지가 화면에 전면 부각된 회화작품들은 초록, 파랑, 군청 등 다양한 색채 변주를 통해 선, 면, 색으로 이뤄진 비구상적 형태의 자연을 거침없이 담아내고 있다.
새로운 색과 회화를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치열하게 노력했던 ‘모던보이‘ 유영국을 만날 수 있는 20주기 기념전이다.
1916년 강원 울진(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 화백은 1938년 일본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1966년부터 1970년까지 홍익대 미술대학 정교수로 재직하였고, ‘국전’ 서양화 비구상부 심사위원장과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기념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 1979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인전 ‘유영국 초대전’, 1964년 신문회관 개인전 등이 있으며, 1978년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의 ‘살롱 드 메 초대전’, 1967년 제9회 도쿄비엔날레, 1963년 제7회 상파울로비엔날레, 1937~1942년 동경 ‘자유미술가협회전’ 등 수많은 그룹전에 참여했다. 1984년 보관문화훈장,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 협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경기도미술관 등에 주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작가는 지난 2002년에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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