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전사적자원관리(ERP) 기업 SAP의 수장이 10년 만에 마주한 한국의 기업 경영진에게 매출·이익뿐 아니라 '친환경 수준'을 기업의 실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전략 가운데 최근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로 더욱 강조되고 있는 환경 관점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경영 프로세스 혁신과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다.
크리스찬 클라인 SAP 최고경영자(CEO)는 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SAP 나우 서울' 콘퍼런스 현장에서 '지능화, 회복탄력성,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그가 CEO직을 맡은 기간은 3년 남짓이지만, SAP 수장의 방한은 짐 하게만 스나베 전 공동CEO가 지난 2012년 7월 고객사와 만나기 위해 방한하고 하소 플래트너 전 공동CEO 겸 SAP 창업자가 지난 2014년 청와대에 방문한 이래로 8년 만이다.
신은영 SAP코리아 대표는 이날 행사 환영사를 통해 "기업은 전례 없는 어려움과 변화를 마주한 상황이며, 지능형 기업으로의 전환이 절실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SAP코리아는 더욱 많은 국내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여정을 지원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SAP코리아와 협력 관계인 삼성SDS, LG CNS, 카카오엔터프라이즈, 현대오토에버 등의 고위 임원들이 SAP 솔루션 도입 사례와 효과를 직접 소개했다.
"이제는 '그린라인' 관리해야"
클라인 CEO는 "한국은 자랑스러운 제조산업의 역사를 갖고 있어 공급망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의 공급망에는 전체 흐름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하고 그 결과 회복탄력성과 민첩성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에 참가해 보니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실천에 나서고자 하지만 부족한 투명성 때문에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며 "제조업 강국 한국에서 탄소배출량을 기업의 전체 가치사슬에 걸쳐 추적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ESG 공시 의무가 2030년까지 코스피 상장사에 단계별로 확대되는데, 작년까지 '톱라인과 보텀라인(매출·수익)'을 관리했던 기업이 이제 '그린라인(친환경실적)'도 관리해야 한다"면서 "SAP가 이 부분을 돕겠다"고 말했다.
SAP는 프로세스 표준화와 ERP를 비롯한 IT시스템의 복잡성을 제거하고 클라우드 이전을 지원하는 '라이즈 위드 SAP' 솔루션과 클라우드 기반으로 진화하는 업무 솔루션을 빠르게 제공하면서 비즈니스 확장과 실시간 의사 결정을 촉진하는 'SAP 비즈니스 테크놀로지 플랫폼(BTP)'을 경영 혁신의 핵심 기반으로 제시했다.
클라인 CEO는 "1년 전 출시된 라이즈 위드 SAP로 확보한 2000여개 고객사 가운데 60%가 SAP의 솔루션을 처음 쓰는 신규 고객사인데 그만큼 이 솔루션이 강력하다는 의미"라면서 "마이크로소프트, IBM, 액센츄어를 포함해 수백~수만명 규모의 직원을 둔 기업들이 영업 채널을 늘리고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라이즈 위드 SAP를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기업 운영 방식 자체를 혁신해야"
최근 1~2년 사이에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와 같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발생하는 문제와 급변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대처하는 것이 기업들의 핵심 과제다. 경영진은 임직원을 설득해 리스크에 대비하고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 자체를 혁신해 나가야 한다. 이때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속도·유연성을 확보하고, 공급망 문제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SAP의 메시지다.
클라인 CEO는 "몇 달 전 우크라이나 보건부가 전쟁으로 공급망이 파괴된 현지에 필요한 의료장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우리는 SAP 비즈니스 네트워크에서 관련 조달·물류 협력 업체 4000여개를 찾아 현지에 필요한 1억2500만 달러 규모의 구급장비·의료기기를 적시에 공급하고 수송할 수 있도록 연결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신기술을 도입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혁신한 기업은 비즈니스를 자동화하고 과거와 달라진 소비자의 행동·수요에 맞춰 움직이는 민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직 안팎에서 다양한 IT시스템의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해 ESG 수준을 파악하고, 경영 활동 전반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면서 생산(스코프1), 에너지소비(스코프2), 공급망(스코프3)을 아우르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시나리오도 실현 가능하다.
클라인 CEO는 "SAP는 지난 50년간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을 혁신해 왔고 내 목표는 앞으로 50년간 시장을 재정의하는 혁신을 지속하는 것"이라며 "한국은 디지털 전환 흐름의 많은 영역을 주도하는 선도국이고, SAP는 여러분의 성공을 위한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SAP는 40만개 기업 고객사를 지원하며 축적된 기술·데이터·비즈니스 노하우로 여러분의 성공을 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차세대 ERP, 양자컴퓨터 활용방안 고민"
클라인 CEO는 이날 콘퍼런스 기조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SAP의 핵심 ERP 제품인 '에스 포 하나(S/4HANA)'의 차세대 버전, 그가 한국을 찾은 목적과 SAP가 바라보는 한국 시장의 중요성 등에 관련된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현장에서 오간 일문일답.
Q. SAP ERP 제품 'R3'의 후속 버전으로 S/4HANA가 나왔는데, 그 다음 버전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하다. 후속 제품명이 'S/5', 'S/6'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기조연설에서 경영자들에게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SAP는 ERP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현재 SAP는 기업들이 당면한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으로 S/4HANA와 비즈니스 네트워크 등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시장의 변화에 앞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맞다. (S/4HANA의 차세대 ERP 제품 브랜드는) '라이즈 위드 SAP'처럼 전혀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메타버스, 양자컴퓨팅, 블록체인, 이런 신기술을 얘기할 때 이걸 활용해 '어떤 고객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이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중국, 독일 등의 연구개발(R&D) 센터에서 많은 SAP 엔지니어들이 고객들과 함께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그 첫 프로젝트가 이미 실행되고 있다. 양자컴퓨팅을 활용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객들이 필요한 분야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오늘 내게도 들려주면 좋겠다."
Q. ERP 솔루션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많은 비즈니스가 온라인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 ERP뿐 아니라 개인화되는 공급망, 조달, 인재관리(HR)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메타버스에도 주목한다. 더 많은 경험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점에 대응해 투자하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소비자가 신발 구매와 같은 행위를 더 개인화된 경험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도 하고 있다. 또 SAP는 애플과 공동으로 제품 생산 과정 중 어떤 공장 설비에 고장이 일어났고 지금 필요한 부품이 무엇인지 확인해 조치를 취하는 공급망 실험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가상공간에서 수행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도 있다. 일부에서 모든 프로세스를 다루는 수준으로 자동화 수준이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줄여 나갈 수 있는 수준까지 AI로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분야에도 투자하고 있다."
Q. 한국에서 최근 크고 작은 횡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 부실한 내부 통제가 원인으로 꼽히지만 ERP 솔루션의 한계론도 제기된다. 한국 최고정보책임자(CIO)를 비롯한 경영진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우선 ERP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데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고객사의 데이터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출처로부터 쏟아지는 데이터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기업이 클라우드로 이전함으로써 확장성과 회복탄력성을 갖춰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 이전(migration)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도록 고객사를 설득하고 있다. 한국의 경영진이 앞으로 2년, 그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로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화하고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바라보면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한국은 놀라운 혁신을 구가하고 있는 국가지만, 안주하지 않고 더 빠르게 혁신하기 위해 기술에 투자하라고 조언하겠다."
Q. 구축형 IT시스템을 고집하는 회사에 어떻게 클라우드 이전을 독려할 수 있을까.
"먼저 필요에 의해 구축형 솔루션을 고수하겠다고 하는 고객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SAP는 오는 2040년까지 S/4HANA를 지원하겠다고 이미 약속했다는 점이다. 다만 한국 기업의 속도 경쟁,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클라우드 이전으로 더 민첩한 사업 기반을 갖출 수 있다. 더 빠르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한국의 기업 입장에서 클라우드 이전이야말로 가장 우월한 모델이다. SAP가 제공하는 혁신을 더 빠르게 수용할 수 있고, 고객이 만족스러워하는 서비스를 더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 우리 5000여명의 엔지니어들이 정기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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