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금융산업 육성 외치기 전에 업보부터 청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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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빈 기자
입력 2022-06-1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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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함께 종식될 것처럼 보였던 국제적인 갈등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형태로 부활했다.

역사는 더 작은 분야에서도 반복됐다. 대한민국 금융권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금융산업 부흥과 내수 활성화를 위해 금융당국이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신용불량자 대거 양산으로 돌아왔다.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 역시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사모펀드 대규모 환매 중단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됐다가 금융소비자가 눈물을 흘린 역사가 국내에서도 반복된 셈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10년도 지나지 않은 사건을 벌써 잊은 듯한 이들이 보인다. 친기업 성향의 정부가 새로 출범한 만큼 금융 분야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금융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진영이 득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금융당국의 기조를 보면 사모펀드 환매중단사태가 먼 옛날의 일만 같다. 금융정책과 감독 당국의 수장들은 지명소감과 취임사에서 각각 '금융규제 혁신'과 '민간의 혁신'을 강조했다. 이쯤 되면 불과 몇년 전에 수조원어치에 달하는 펀드의 환매가 중단된 국가의 금융당국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모험자본이 유니콘과 데카콘 기업을 잇따라 탄생시키고 있는 선진금융시장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금융산업 육성이 마냥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모펀드 규제완화라는 금융산업 육성책이 야기한 판매사와 피해자의 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들 가운데 일부는 피해자와 판매사 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아직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심의위원회조차 개최되지 않은 사모펀드도 남아있다. 또 분조위 중재안에 만족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소송전에 돌입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여진은 향후 몇년은 더 지속될 전망이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되는 것은 금융산업 육성정책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도 이어진다. 불과 몇년 전에 정부 정책을 믿고 사모펀드에 투자했던 이들이 여전히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면 누가 정부의 정책을 믿을 수 있을까. 금융소비자 보호를 외면했던 업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그리고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육성책을 시행한다면 발표 이전에 섣부르고 잘못된 규제완화로 인해 생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먼저다. 업보를 청산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금융당국의 새로운 수장들이 금융산업 육성 논리에만 매몰돼 금융소비자 보호를 외면, 신뢰회복을 소홀히 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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