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국제표준의 '룰 메이커' 대한민국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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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입력 2022-07-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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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제일 먼저 배우고 익히는 것이 바로 룰(rule), 즉 규칙이다. 물론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해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예전 스크린골프 최강자가 대회에 출전하였다가 1라운드에서 벌타를 너무 많이 받아 경기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게임과 실전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이처럼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게임에서 이기기 힘들다.

규칙은 게임을 공정하고 안전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 규칙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까? 지금껏 우리는 종종 국가 대항전에서 자국의 우승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대회를 보며 경기가 안 풀릴 때 해당 국가의 졸열함을 탓하며 욕하기도 했으며, 온갖 치졸한 판정 속에서도 꿋꿋하게 역경을 극복해 내는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거나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상황에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현대사회에서 게임의 규칙은 ‘표준’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세계적인 기업들은 앞선 기술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기술 발전과 함께 개인이나 기업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서로 협력하고 뭉쳐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어떠한 국가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2021년 무역의존도는 70.1%를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무역의존도란 한 나라 경제가 무역에 의존하는 정도를 나타낸 지표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제의 안정성이 훼손될 가능성 역시 높아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다 보니 최근 국제유가 변화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우리 제품을 외국에 수출하고자 한다면 유통하기 전에 안전에 대한 인증을 받아야 하며 인증 기준은 무역기술장벽(WTO/TBT) 협정에 의해 국제표준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전기전자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출입품은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ISO)의 표준에 해당된다. 1947년 출범한 ISO는 여러 국가들이 표준 제정 단체에서 뽑힌 대표로 이루어진 표준화 기구로, 우리나라 역시 ISO에 가입해 있지만 우리는 아직 기구 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룰 메이커 위치는 아니었다.

지난 2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ISO 차기 회장 선거에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이사가 입후보했음을 발표하였다. ISO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표준 수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표준기구로 ISO 회장은 총회와 이사회 의장으로서 의사 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 중국 역시 후보로 출마하였기에 오는 9월 ISO 총회에서 차기 회장 선거를 통해 선정되겠지만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회장 출마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지금껏 국제표준의 발전은 오랫동안 산업화된 서구 국가들이 주도했다. 반면 우리나라 표준의 역사는 산업화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1960년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산업화 정책을 수립하면서 공업표준화법을 제정하면서부터 표준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ISO 이사회 멤버로 한국인 41명이 산하 기술위원회 의장과 간사로 활동하며 국제표준화와 국제표준화 기구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ISO에서 발표한 국가별 활동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8위에 위치해 있다. 아무리 우리 스스로 아시아를 대표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번이 첫 번째 회장 출마라는 부분은 아쉽다. 2015~2017년 회장직을 맡았던 중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역시 ISO 회장을 배출한 바 있으며, 일본과 인도는 벌써 두 번씩 회장을 역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장 출마를 통해 우리나라 역시 국제표준기구에서 의사 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ISO 회장 선출은 우리나라가 상임이사국에 포함될 가능성 역시 증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조성환 후보자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 대표이사로서 리더십과 능력을 인정받았음은 물론 현대자동차 미국기술연구소 법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 경험을 통해 국제 표준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높은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지만 아직 선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중국이라는 강력한 후보와 경쟁을 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 기업들이 글로벌 표준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미 발전 분야에서는 표준 제정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우리네 나쁜 습관이 누군가 하겠다 하면 자기가 할 것도 아니면서 괜한 꼬투리부터 잡는다. 물론 당선된다면 해당 기업에도 큰 영광이겠지만, 회장 당선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물론 국격과도 관련된 일이다.

이미 국내 기업들 역시 합종연횡(合從連橫)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기차는 물론 베터리 등 신산업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국내 기업들은 경계를 넘어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아직도 표준을 ‘고정된 획일화’라 오해하며 표준화를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기업들 간에는 국제표준을 장악해야 한다는 인식의 공감대 속에 산업 간 경계를 뛰어넘는 제휴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ISO 회장 출마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국내 산업과 기업의 발전과 표준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노력에 대해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첫 번째 회장 출마가 우리나라 첫 번째 ISO 회장 선출로 이어짐으로써 국내 기업들의 표준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계속된 도전 끝에 우주를 품은 ‘누리호’처럼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와 국민 모두 국제표준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표준 전문가 양성 및 국내 상황에 맞게 토착화된 국제표준의 룰 메이커, 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다시 한번 오는 9월 기쁘고 위대한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선거 끝까지 건강 챙기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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