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올해 2월 초 울산 남구의 한 음식점에서 무전취식을 한 60대 남성은 업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즉결심판 통지예고서를 발부하려 하자 욕설을 하며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등 폭행했다. 그는 3월 초에도 남구의 한 주점에서 술병을 들고 10분간 행패를 부리다 출동한 경찰관의 가슴 부위를 때렸다.
경찰관 대상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한국 사회의 공권력 경시 풍조가 지목되고 있다. 경찰이 엄정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이들은 2018년까지 1만명대 초반을 유지했다. 최근 3년 동안엔 2019년 9947명, 2020년 9743명, 2021년(잠정) 8213명으로 다소 감소했다. 하지만 감소분은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시민들의 야외 활동이 감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공권력 경시 풍조로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흥분한 시민을 상대로 합법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더라도 인권 침해 시비나 인사 불이익 등에 대한 우려로 정당한 법 집행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당시 경찰이 민주노총 등 친정부 단체의 막무가내식 집회들을 묵인한 것이 공권력 경시 풍조를 강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문재인 정부 시절 불법 시위 사법처리 건수는 2015년과 2016년 각각 491건, 512건에서 2018년과 2019년 173건과 204건으로 급감한 바 있다.
이러한 우려에 경찰청은 지난 2019년 예규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비례의 원칙에 입각해 가해자가 흉기·둔기 등을 들고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상황에서 최대 권총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장을 잘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성이 높은 현장에서 매뉴얼에 따라서만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매뉴얼 상으로는 단순히 흉기만 소지하고 있는 가해자에게 권총을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해자가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장비 사용 규정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은 현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업무 특성상 재량 행위가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 장비는 현행범과 맞닥뜨렸을 때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의 도주를 방지할 때 등의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테이저건을 위시한 위해성 경찰 장비도 ‘상대방 얼굴을 겨냥해서는 안 된다’, ‘14세 미만 청소년, 임산부에게 사용 금지’ 등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신경쓰기엔 복잡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경기 남부지역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위급한 현장 상황이 10개라면 10개 모두 다르다. 매뉴얼을 아무리 신경써도 긴박한 순간에 테이저건 겨냥 실수 같은 것이라도 한다면 책임은 경찰관 개인이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모든 상황들을 표준화된 매뉴얼로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매뉴얼을 포괄적으로 규정해주는 게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민원 제기와 감찰·인권위원회 조사 등도 경찰의 정당한 법 집행을 방해하고 있다. 경찰조직이 민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출동 경찰관이 초동 조치와 현장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그간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공권력 경시 풍조가 나타났다”며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나면 과잉 진압이 아니었다는 입증부터 민사 손해배상까지 경찰관 개인이 감당해야 하기에 자존심 상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라는 조직이 강력히 서포팅(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법원도 경찰에만 너무 엄격한 잣대를 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경찰관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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