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기사 고용보험 의무가입 정책을 놓고 배달 플랫폼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책이 시행된지 6개월이 지났지만, 정부가 여전히 고용보험 신고 및 납부 의무는 플랫폼사에 떠넘긴채 제대로된 관리 시스템 하나 구축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당장 내년 7월부터 배달 기사 산재보험 가입 의무까지 더해질 예정이라 업계에선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정부, 라이더 고용보험 의무화 졸속 시행 뒤 나몰라라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4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배달대행 플랫폼사들에 보험사무지원금 무기한 연기 안내 이메일을 보냈다. 당초 공단은 지난 17일 1분기 노무제공플랫폼사업자 보험사무지원금 신청을 개시하기로 했지만 지급 처리를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지급이 미뤄진 것이다.
그간 배달 대행 플랫폼사들은 배달 라이더의 고용 보험 가입을 위한 입직‧상실 신고 서류를 작성해 근로복지공단 측에 전달해왔다. 법 개정을 통해 노무제공플랫폼사업자가 이용계약을 맺고 사업주와 노무제공자가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경우 플랫폼사업자가 사업주 대신에 고용보험 의무사항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달 대행 플랫폼사들은 지난 1월부터 적게는 수백개에서 많게는 1000개 이상의 지점에서 관리하는 배달 기사들의 입직과 상실 신고 자료를 통합하는 작업을 시행해왔다. 수만명에 달하는 배달 기사들의 정보를 관리해야 하다보니 기존 업무도 제쳐두고 고용보험 관리 업무에 많은 인원이 매달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어렵사리 정보를 모아 전달해도 경우에 따라 취득 또는 상실 신고가 반려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배달 기사 직업 특성상 여러 플랫폼 업체에 속하면서 근무 일정도 들쭉날쭉해 관련 정보의 정확도가 낮은 탓이다.
이런 가운데 공단 측은 ‘처리 오류’라는 사유 외에 정확한 반려 이유에 대한 공지를 하지 않아 플랫폼사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고용보험 누락 건수만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공단은 오는 7월 1일부터 누락 건수가 쌓이면 플랫폼사에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 배달 라이더 고용보험, 반년 지났지만 ‘시스템 미비’ 여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공단도 업계의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체적으로 라이더들의 소득정보를 원활하게 취합하기 위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아직 개발 전인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플랫폼사에서 대량의 정보를 공유하는 상황에 있어 불편한 상황이 있다는 점은 공감을 한다”면서도 “이를 위해 최근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업 공모도 마치고 개발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며 이외의 토털서비스 사이트 구축 등은 문제 없이 진행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업계 의견은 이와 다르다. 공단 측이 언급한 토털서비스 사이트 구축 역시 전혀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다.
실제 공단 내 마련된 고용, 산재보험 토털서비스 사이트에서 근로자고용정보현황조회 메뉴가 있지만, 데이터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배달 라이더들이 월평균 보수에 근거해 개개인의 고용정보 현황을 조회하고 싶어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배달 라이더들 조차 고용보험과 관련된 내용을 플랫폼사로 문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배달대행업계 관계자는 “라이더들로부터 고용보험 가입여부 및 고용보험료 환급 관련 항의 문의 전화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심지어 공단은 고용보험 관리 인력이 따로 있음에도 라이더들에게 개인의 고용보험 취득 또는 상실 내역 등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경우 플랫폼사에 문의해 보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업계에선 이 모든 문제가 고용노동부의 ‘졸속 행정’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장 의견을 무시한 채 성급하게 라이더 고용보험 의무가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오는 2023년 7월부터는 산재보험 의무가입까지 확대돼 업계 시름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플랫폼사는 라이더와 직접 계약관계에 있지 않음에도 고용보험 수기 신고로 인한 과도한 업무와 추가 인력 배치 비용, CS 대응 등 공단과 개별 사업주의 책임을 모두 대신 부담하고 있다”며 “고용보험 의무적용 취지에 공감해 최대한 협력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이에 더해 산재보험 신고까지 이어지는 등 사기업이 공공기관 업무를 대행하는 현 상태가 고착화될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용보험은 그래도 지난 1월부터 시행돼 어느 정도 시스템에 적응이라도 됐지만 내년에 시행될 산재보험과 관련해서는 시행 일정만 정해졌지 어떤 방식으로 도입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조금도 정리된 것이 없다”면서 “이대로 가면 산재보험 역시 고용보험 시행 때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용보험 신청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구축하게 되면 산재보험 의무화 시행도 신고 데이터만 넣으면 바로 검수 및 신청이 가능하도록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지원금 지급 문제 및 기타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서도 플랫폼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