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낙태권 논쟁 들불처럼 번져…중간선거 판도 뒤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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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2-06-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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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낙태권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4일(이하 현지시간) 낙태를 헌법적 권리로 확립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이에 따라 미국 주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보인다. 49년 만에 뒤집힌 판결을 둘러싸고 미국 사회의 분열은 심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헌법은 수십 년간 임신중절 여성을 보호해왔지만, 이번에 연방대법원은 이전의 판단과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서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의회와 (11월에 치러지는) 중간선거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플레 책임론 피할 수 있을까···공세 강화하는 민주당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보수주의 성향의 주 정부들은 새로운 낙태 규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미주리 등 일부 주는 해당 판결 직후 낙태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번 판결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공화당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이어갔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24일 동료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민주당은 자유와 안전의 정당인 반면 공화당은 처벌과 통제의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FT는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낙태권의 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민주당과 백악관에는 '악몽'과 같은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신문은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에 '낙태권 논쟁' 국면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FT는 "민주당은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진보 진영을 자극하고, 온건파 부동층을 공화당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면서 "판결이 만들어낸 (정치적) 변화들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가져다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 기간까지 이번 낙태 금지 판결에 정치적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간 보장되어온 권리를 공화당이 앗아가 버렸다고 주장하면서 공화당이 극단적 성향의 판사들과 연대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에서 대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다. 40년 만에 최악인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을 급락시킨 탓이다. 그 때문에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여성을 비롯해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칠 경우, 11월 중간선거의 판도는 달라질 수 있다.

민주당 소속의 멜라니 스탠스버리 하원의원(뉴멕시코)은 "이 결정으로 지금 당장 영향을 받게 될 수백만 명의 여성과 개인들은 공포에 질렸으며,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격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과정(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판결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펜실베이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존 퍼터먼은 트위터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번 판결과 싸울 것이다"라고 올렸다. 이어 "나를 미국 상원으로 보내라, 그러면 나는 자랑스럽게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법으로 성문화하는 법안에 찬성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공화당 지도부는 일단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이것은 모두에게 잘된 일"이라면서 이번 결정을 칭찬했다. 그러나 이번 의견에 서명한 6명의 보수파 판사 중 3명을 자신이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내린 결정"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공을 크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공화당 의원 중에도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의 온건파 공화당원인 브라이언 피츠패트릭은 "여성의 사생활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도 존중한다"는 중도적 입장을 위해 새로운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갈라지는 미국···캘리포니아 등 낙태 시술 보호조치 내놔
"연방대법원은 끔찍한 결정을 내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로 출발하기 전에 총기규제법안에 서명하면서 이번 판결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당 정부와 진보주의 성향의 주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블링컨 장관은 성명에서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국무부 직원들이 산부인과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성명을 통해 산부인과 시술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둔 주(州) 정부들도 낙태 시술을 보호하는 조치를 도입하고 나섰다. 미네소타, 워싱턴 등이 대표적이다. 낙태 시술을 위해서 다른 주로부터 넘어오는 이들을 보호하는 법적 조치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낙태권을 보장하려는 민주당의 입법적 노력은 아직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하원은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60표를 얻어야 하는 상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반만 넘어도 표결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원 표결 제도 변경은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기 때문에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외신은 전했다. 

 

낙태권 옹호자인 로빈 곽(20)이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25일 워싱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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