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치판을 짜주는 곳이 선거판이다. 출발선인 셈이다. 따라서 선거판은 정치판보다 더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민선 8기 서울 지역 선거에서 그렇지 못한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서초와 관악 두 지역이 대표적이다. 투표만 했다 하면 오롯이 국민의힘이요, 오롯이 더불어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거의 무투표 당선 수준이다. 유권자 수준이 시간의 무지 속에 묻혀 있는 낡은 지역이라고 폄하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6·1 지방선거 직전 코로나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1인당 5만원씩 현금을 나눠줘 당선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과반을 갓 넘은 지지를 받았다. 이 돈은 코로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무차별적으로 제공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이라면 말 그대로 코로나 재난자에게 지원해야 마땅한 돈 아닌가. 박 구청장의 답변을 듣고 싶다.
서초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서울시, 행정안전부 등을 거친 정통 행정관료다. 구청장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해도 서초구 유권자들의 투표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72.31%를 득표했다. 누가 봐도 몰표다. 무투표 당선이나 진배없다.
서초 지역은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선거만 했다 하면 민주당을 줄초상낸다. 민주당은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선택 받지 못했다. 혹자는 서초 지역 유권자들 가운데 총선을 비롯해 모든 선거에 출마해 당선될 수 있는 스펙을 가진 인물이 2만명은 넘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각각 당선시킨 서울시민과 성동구 유권자들 표심을 보자. 앞선 두 지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오·정 두 단체장에게 던진 표를 살펴보면 서울 지역에서 지방선거 때만 되면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이른바 '줄투표' 행태가 사라지고 '교차 투표'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실용 투표를 했고 합리적 선택을 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5년 내내 극단으로 치달았던 진영 논리 대신 상당 부분 시대정신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이는 두 단체장이 유권자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실용적 정책을 실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권자 의식도 깨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정 구청장이다. 그는 이번에 3선 구청장이 됐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한 기록이다.
이번 지방선거 당시 서울 전 지역에서 ‘오세훈 바람’이 일자 민주당은 추풍낙엽이 되고 정 구청장을 비롯해 7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 후보보다 15.21%포인트나 많은 57.60%를 획득했다. 오 시장이 성동 지역에서 60.90%를 득표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오세훈 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정 구청장이 지난 8년간 성동구민에게 만족감, 효능감과 신뢰도를 한층 심어준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는 노후한 공장지대 성동을 뉴욕시 자치구인 ‘브루클린’처럼 쾌적한 도시로 변화시켰다. 신혼부부가 첫 둥지를 트는 성동, 아이 키우기 좋은 성동, 맞벌이 부부가 살기 좋은 성동 등 젊은 도시를 건설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일터·쉼터·삶터 삼박자를 모두 제공한 것이다. 게다가 소외됨이 없는 포용도시 건설도 추진했다. 임차인, 청년, 근로자, 여성, 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정책도 유권자 피부에 와 닿게 했다. 정 구청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서울시장감으로 급부상하는 이유다.
오세훈 시장을 보자. 그는 보궐선거 후 지난 1년간 유권자 신뢰를 한껏 받았다. 신속통합기획의 재개발·재건축, 글로벌 톱10 도시 경쟁력 등 많은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약자와의 동행'이 가장 눈에 띈다. 생계(안심소득), 주거(서울형 고품질 임대주택), 교육(서울런), 의료(공공의료) 등 4대 영역이 공약의 핵심이다.
지난해부터 펼치고 있는 이들 정책의 진정성이 시민 속으로 파고들어 압승을 거둔 것이다. 아직도 한참 남아 있는 대선이지만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 후보로 오세훈 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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