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의 신용도 개선 등에 따라 현재 이용 중인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금리인하요구권’이 도입 20년을 맞았다. 본격적인 금리상승기를 맞아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가 전 금융권 과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실제 혜택을 적용받기까지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0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소비자들의 금리 부담 완화를 언급하며 ‘금리인하요구권’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이 원장은 “물가 상승 등이 경제적 취약계층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보험권에 도입된 금리인하요구권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소비자 안내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앞서 지난주 열린 17개 은행 CEO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도 금융사 차원의 대출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하며 ‘금리인하요구권 제도' 활성화를 당부한 바 있다. 은행과 보험사뿐 아니라 카드사나 저축은행에도 금리인하요구권이 도입돼 있는 만큼, 다음주 진행될 여전사(5일)·저축은행(8일) 수장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된 금리인하요구권은 직장 변동이나 자산 및 소득 증가, 부채 감소, 승진 등 신용등급 상승요인이 발생할 경우 금융기관에 이미 실행한 대출의 금리를 깎아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는 금융기관이 알아서 적용해주는 제도가 아닌, 대출자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또 일반신용대출, 카드론 등과 같이 이용자의 신용상태에 따라 금리가 변동되는 상품(정책금융 등 제외)을 대상으로만 적용이 가능하다.
이 원장이 금리인하요구권을 직접 언급하고 나선 배경은 올 하반기 금리 상승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기준금리 연속 인상에 이어 이달 한은 금통위에서 빅스텝(한 번에 금리 0.5%포인트 인상)이 유력한 상황.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6월 평균 연 4.14%)는 8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도 연 8%를 향해가고 있다. 가계대출 10건 중 8건이 변동금리인 만큼 금리 상승은 차주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은행 등 특정업권뿐 아니라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실제 오는 5일부터는 단위농협과 수협, 신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조합 이용자들도 금리인하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상호금융업권의 금리인하요구권은 행정지도로만 운영돼왔으나 지난달 신용협동조합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법으로 의무화된 것이다.
신청건수 역시 과거 대비 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권에 대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건수는 지난 2020년 기준 91만51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66만8591건)과 비교해 24만여건 늘어난 수치다. 지난 2017년 19만7927건에 불과했던 금리인하요구권은 2018년 35만9611건으로 해마다 20만건 이상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리인하 요구에 대한 수용률은 2020년 기준 37%로 과거(2018년 47%, 2019년 42.6%) 대비 되레 하락하고 있다. 업권별로는 은행권 수용률이 31.6%로 가장 저조했고 보험사가 48.8%로 그 뒤를 이었다. 저축은행과 여전사의 경우 각각 62.6%, 58.3%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용률을 나타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금리인하요구권 수용건수 자체는 늘고 있으나 모바일 등 비대면을 통해 신청하는 방식이 늘면서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신청이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사의 안내·홍보 부족과 복잡한 신청·심사절차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 4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미스터리쇼핑 결과에서도 대형은행들이 고객들에게 안내를 생략하거나 제출 서류나 비용, 통보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도 드러났다.
현재 금리인하요구권을 자사 서비스로 적극 구현하고 있는 곳은 은행권 후발주자인 인터넷전문은행들이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토스뱅크의 경우 고객들에게 금리인하 기회를 먼저 알려주는 '상시 금리인하 알림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지난달 27일 기준 총 4만4073명이 토스뱅크의 '금리 낮아질 때 알림받기' 서비스를 이용 중이며, 이 중 1만3200여명이 실제 알림(PUSH) 서비스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금리 인하가 승인된 고객들은 최초 대출 시보다 7.96%포인트가량 낮은 저금리 혜택을 받거나 신용점수가 최대 379점이나 개선되는 등 이른바 ‘크레딧 빌딩(Credit building)’ 효과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도 CB등급 상승고객 등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은 고객에 대해 수시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카뱅의 해당 서비스는 지난해 금융당국의 금리인하요구권 제도 개선 우수사례로 선정돼 여타 금융권에 공유되기도 했다.
시중은행들도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성화하라는 당국 요구에 부응해 연 2차례 이상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등을 통해 안내에 나서는 한편, 신청 절차 간소화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금리인하요구권 비대면 신청과 승인 프로세스를 시행하는 한편 영업점이 아닌 별도 부서에서 해당 업무를 집중 처리해 금리 인하 요구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이달 말까지 금리인하 요구 신청부터 약정 실행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 중에 있다.
한편 오는 8월부터는 은행연합회와 여신금융협회 등 각 금융권협회 홈페이지에 개별 금융회사의 금리인하요구권 실적이 고스란히 공개될 예정이어서 실적 개선을 위한 금융권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가계대출과 기업대출(개인사업자대출 포함)에 대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건수와 수용건수, 이자감면액 등을 공개하게 된다"면서 "이를 통해 금융소비자들은 소비자 권익에 보다 적극적인 은행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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