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내면서 물가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달부터는 유류세 인하 폭이 37%로 확대되고, 개별 포장된 단순 가공식품의 부가가치세도 면제된다. 그러나 이미 치솟은 물가를 잡기란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달부터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인상돼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많이 올리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에 이자 걱정까지 더해져 더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다. 물가 잡으려다 되레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물가 6% 진입하나...커지는 불안감
물가가 위태롭다. 지난해 말부터 심상치 않던 물가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은 현실이 됐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상승했다.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이미 천장을 뚫은 물가는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월 물가는 오는 5일 발표한다.
정부도 물가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그리고 국제 곡물가가 급등해 그 영향을 저희가 필연적으로 받고 있다"며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물가 상황이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는 경제 지표로 확인됐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5월(3.3%)보다 0.6%포인트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0.6%포인트 상승 폭은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기록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앞으로 1년간 예상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1년 뒤 물가상승률이 4% 정도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진다는 건 물가가 정점을 통과하는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소비심리는 크게 쪼그라들었다.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4로 5월(102.6)보다 6.2포인트 떨어졌다. 2021년 2월(97.2) 이후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선인 100을 밑돈 것이다.
CCSI는 소비자동향지수(CSI)를 구성하는 17개 지수 가운데 현재생활형편·생활형편전망·가계수입전망·소비지출전망·현재경기판단·향후경기전망 등 6개 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지표다. 100보다 높으면 장기평균(2003∼2021년)보다는 소비심리가 낙관적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지수가 100 밑으로 내려오면서 소비자심리가 '비관적'으로 돌아섰다는 의미로 읽힌다.
최근 나온 경제 지표를 종합해보면 물가 상승 심리가 확산하는 동시에 부정적 경기 전망도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이 우려되는 지점이라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최근 '저성장-고물가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하반기(7~12월)에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경연은 보고서에서 "수입 물가를 통한 공급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물가 상승률 고점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묘수로 떠오른 '빅스텝'...금리 올려도 문제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자 한은이 '빅스텝(한꺼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급격히 불어난 유동성이 여전히 회수되지 않은 채 시장에 풀려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급격한 금리인상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 회수 시그널을 줘 물가 불안 요인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다.한은 내부에서도 6월 소비자물가가 6%대를 기록할 경우 빅스텝에 나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주요 경제 전망기관들은 이미 6월 물가가 5% 후반~6% 초반까지 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3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빅스텝이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은이 고물가 상황과 기대인플레이션 관리에만 초점을 맞춰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면, 체감 경기는 더 나빠지고 소비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21일 "빅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물가가 올랐을 때 우리 경기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변동금리부 채권이 많기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무조건 금리를 올린다고 고물가 상황이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금리 인상이 가파르게 단행될 경우 가계부채와 기업 조달 비용이 급증해 되레 내수 경기가 침체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8%에 임박하고,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대출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져 소비심리가 얼어붙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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