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간된 미국의 전 국가안전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er) 존 볼턴의 회고록을 읽다 보면 섬뜩하게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느끼게 된다. <그 일이 발생했던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세 차례의 북·미 회담에 할애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중재 역할을 자처했던 한국의 외교가 얼마나 서툴고 비현실적이었는지를 낯뜨겁게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과의 회담 과정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얼마나 미약했는가를 적나라하게 기술한다.
이 회고록 내용 일부는 이미 언론에 공개된 바가 있지만 한국과 관련된 상당 부분이 아직은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책의 출간을 막기 위해 자료 공개 거부, 검열 위협 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했던 것은 그만큼 새롭고 폭발적인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 회담과 이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역할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와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한국 외교의 한계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을 통해 되풀이되는 핵심적인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처한 북·미 간 중재의 역할이 애초부터 현실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각자 철저하게 자신의 계산에 따라 행동했을 뿐 한국 정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양 지도자 모두 한국의 중재 역할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 합세하기를 원했지만 반기지 않았고 북·미 간 판문점 회담 때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한국이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양측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왜곡이 생겼고 결국 회담은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미국 정부는 한국의 중재 의도가 “국내 정치적 이유”라고 보았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햇볕 정책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통일 의제”를 가지고 북·미 회담을 중재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미국의 목표인 북한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그는 한국이 “바보스러움”의 결과를 치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의심 속에서 미국이 한국의 중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강성 네오콘인 볼턴은 처음부터 북·미 회담에 회의적이었다. 독재자 김정은을 국제 외교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은 미국에게 치명적 실수라 단정했다. 그러기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핵 폐기가 없는 한 북한이 바라는 그 어느 것도 들어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였다. 그러기에 북한이 영변 핵시설 해체의 대가로 유엔 제재 완화를 요구했을 때 이를 극렬하게 반대했다. 영변 해체 계획이 “의미있는 첫 단계”라는 문 대통령의 의견을 “정신분열적 생각”이라고 책에서 표현한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좀 복잡하다. 큰 틀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외교 목적을 추구하지만 각론에 가서는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 회담을 이용하고자 한다. “국제적인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언론에서의 한 건”을 노리는 “쇼”이자 “제스처”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거듭된 확약과는 달리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깨닫고 결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러나 그때마저도 언론을 의식한다. 스몰딜과 회담 파기 중 어떤 것이 더 언론의 조명을 받을지 사전에 보좌관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회담이 결렬되는 그 순간까지도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은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는 빅딜이 탄생될 것으로 기대하고 꿈에 부풀었다는 사실이다. 국내 언론 및 분석가들은 이제 막 발표될 획기적 합의에 대해 성급한 낙관론을 펴며 향후 장밋빛 진단을 내놓았다. 한국 정부 및 언론은 온건파가 주도하는 국무성의 대북 협상 소식에만 매달려 정작 매파가 주도하는 백악관의 실제 모습을 간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일종의 확증편향이었다.
이 밖에도 볼턴 회고록은 자국 이익만을 중시하는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여러 곳에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볼턴은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 의견을 거리낌 없이 제시한다. 한국이 입을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다. 트럼프는 한국에서 전쟁 가능성이 50 대 50이라고 보고 볼턴의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또한 한국을 “부자”나라로 간주하며 미군 주둔 비용 인상을 줄기차게 요구한다. 연 10억 달러 수준의 한국 부담을 50억 달러로 하루아침에 올리기 위해 그는 미군 철수를 협박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그 때문에 50억 달러 받기가 쉬워질 것이라고 참모들에게 단언한다. 문 대통령이 종전협정 등을 요구하면 반대 급부로 주둔 비용 인상을 언급한다. 겉으로는 피로 맺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결국 한국은 수천 마일 떨어진 타국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는 트럼프 특유의 동맹 경시 정책에 기인하고 현 바이든 행정부의 생각은 좀 다르겠지만 한국이 잊지 말아야 할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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