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보고서] 거수기 이사회? SK그룹은 달라요…무배당 뒤집고 신사업 제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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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2-07-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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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기업 대비 반대·부결률 최대 8배 높아

  • 경영진 비판·견제 등 본연 역할 충실 이행

  • 계열사별 이사회 독립경영체제 본궤도

재계는 최근 2~3년 동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트렌드를 한창 강조하고 있다. 실제 재계 20위권 안에서 ESG 관련 업무를 맡을 조직을 신설하지 않은 기업집단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ESG 중 유독 지배구조 부문의 혁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대기업들이 환경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투자 등을 늘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다. 아주경제가 대기업그룹의 지배구조 현황과 혁신 방향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국내 대기업그룹 계열사 이사회가 대부분 거수기 이사회라는 지적을 받는 가운데 SK그룹은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회사의 배당정책이나 신사업 진출 등 굵직한 사안을 부결시키는 등 경영진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이사회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시각에서다.

SK그룹 계열사의 이사회는 여타 대기업그룹보다 6~8배 높은 수준의 이사회 표결 반대율·부결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ESG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덕에 선진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 계열사 이사회, 반대율·부결률 타 그룹보다 6~8배 높아

4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 636개사 중 이사회 표결 내역을 공개한 20개사의 투표를 분석한 결과 이사회 안건 부결률과 반대율 각각 0.89%와 0.79%를 기록했다. 

이는 10대 그룹 중 SK를 제외한 나머지 그룹 계열사(83개사) 이사회의 안건 부결률과 반대율이 각각 0.11%와 0.12%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격차다.

다른 그룹 계열사 이사회 구성원들은 2만표 이상의 찬성표를 던지는 와중에 반대는 단 23표에 그쳤다. 이를 통해 3220건의 안건이 가결되는 동안 부결된 안건은 4건에 불과했다.

반면 SK그룹 계열사 이사회에서는 다른 9개 그룹의 합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47표의 반대가 기록됐다. 부결된 안건도 역시 다른 9개 그룹 합산보다 훨씬 많은 7건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SK그룹의 ESG경영 의지가 계열사 이사회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분석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국내에 ESG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대중화시킨 인물로 꼽힌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룹 전체적인 전략 회의 등에서 ESG 관련 화두를 강조한 만큼 계열사 등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SK그룹 각 계열사]

◆SK이노베이션 이사회, 배당 없다던 회사 방침 180도 선회

재계에서는 SK그룹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배당 정책을 이사회가 정반대로 선회시킨 것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1월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2021년도 주주 배당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안건을 부결시켰다. SK이노베이션 경영진은 현금 부족과 배터리 등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 부담을 감안해 무배당 안건을 상정했지만 이를 잘못됐다고 본 것이다.

이사회는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흑자전환에 성공한 만큼 주주 신뢰를 위해서 주주 배당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이사회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한 것을 놓고 주주들의 불만이 큰 상황에서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안건 부결에 SK이노베이션도 자사주를 활용한 현물 배당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임시 이사회를 열어 보통주와 우선주 1주당 자사주 0.011주를 배당하고, 우선주에는 현금 50원을 지급하는 배당안을 상정했다. 다시 소집된 이사회는 회사의 안건을 승인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투자 등으로 현금이 없어 배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무배당 안건을 상정했는데 이사회에서 이에 대한 시각이 달랐다"며 "이사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현물배당으로 정책을 선회했다"고 말했다.

◆SKC, 신사업 타당성도 적극 검토···거수기 이사회 타파 눈길

회사 측이 야심차게 제시한 신사업 진출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한 차례 부결시킨 사례도 눈에 띈다.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다른 대기업 그룹의 이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SKC는 지난 2020년 SK넥실리스(옛 KCFT) 인수로 시장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이후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 중 차세대 양극재와 음극재 사업에도 진출한다는 청사진을 지난해 제시했다. 청사진 실현을 위해 SKC는 지난해 9월 실리콘 음극재 관련 영국 넥시온과 합작법인 투자 건을 이사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SKC 이사회는 해당 안건을 부결시켰다. 회사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신사업이었지만 몇몇 이사진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SK그룹 계열사인 SK머티리얼즈가 미국의 음극재 기업과 합작사를 세우겠다는 발표에 영향을 받은 판단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소재기업인 SK머티리얼즈가 음극재 사업에 먼저 진출하게 된 상황에서 SKC도 음극재 사업에 진출할 경우 한 지붕 아래 두 기업이 각자 경쟁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에 이사회도 그룹 계열사와의 중복 투자 가능성을 감안해 더욱 타당성을 따진 것이 아닌가하는 관측이 나온다.

이후 SKC는 각 이사들의 의견을 수용해 재무적투자자(FI) 2곳을 끌어들이는 등 음극재 투자 관련 세부사항을 보완했다. 이에 같은 해 11월 이사회는 음극재 합작법인 투자 건을 통과시켰다.

재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C의 안건 부결이 경영진의 감독·견제라는 이사회 본연의 기능을 십분 발휘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는 이사회가 많은 상황에서 회사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는 등 제대로 역할을 해냈다는 시각에서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별로 이사회 독립 경영 체제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수펙스나 지주사에서 계열사의 사업과 투자 현황을 조율하지 않는다"며 "SK이노베이션의 배당 정책과 SKC의 신사업 투자는 각자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며 타당성 등도 자체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사진=SK이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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