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는 선인(善人)이 아니다. 지옥을 봐야 한다. 정치는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지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길만 말하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천국으로 가는 길밖에 모른다며 다 같이 손잡고 가자고 하면, 자칫 모두를 지옥으로 이끌게 된다. 동물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계도 결국 싸움터다. 일단 싸움터에 나가면, 즉 프로가 되면 ‘절대로’ 이겨야 한다. …투쟁할 때는 상대를 잘 알 것, 자신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할 것, 자신의 입으로 표현할 것, 이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신동아> 2010년 12월호,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1937~)는 로마제국 탄생에서부터 전성기까지의 통치철학과 제도를 논하면서 “이상적인 정치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숙지하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며 고대 로마인들이 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오노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라고 했다.
윤언여한(綸言如汗), “말이 많으면 자주 처지가 궁색해지니 중도를 지키라.”
윤석열 대통령이 메시지와 국무위원 등 중요 인사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과 정치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설득 능력이 중요한데 윤 대통령의 파격적인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이 관심을 끌고 있다. ‘권력형 침묵에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 변화’라고 호평하지만 적당한 거리 두기의 기술이 없으면 ‘스스로 판 자기 덫’이 될 것이라는 간언에 더 공감한다. 윤 대통령의 거침없는 바깥 나들이에 대해 오죽하면 도어스테핑으로 족하다며 “대통령님을 말려주십시요! 위험합니다. 소탐전실(小貪全失) 됩니다”는 대통령의 안위(安危)를 우려하는 의견광고가 게재되겠는가? 역대 정부에선 볼 수 없었던 탈권위주의적 신선한 소통방식임은 분명하지만, 권위주의와 권위는 구분돼야 한다. “내가 곧 프랑스다”며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드골 대통령의 “지도자는 대중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지적은 지도자의 권위가 정치 행위에서 중요한 덕목임을 암시하고 있다. 대선 중에도 윤 대통령의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답변은 종종 논란이 되곤 했다. 정치는 말인데 정제되지 않고 거침없이 대답하는 응구첩대(應口輒對)는 설화(舌禍)를 잉태한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말은 정치(精緻)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말의 무게는 곧 자리의 무게다. 국민을 향해 구사하는 레토릭은 지도자 품격의 평가 기준 중 하나이자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중심이다. 국가 지도자의 세계관과 의식구조는 국가의 미래와 국격을 좌우하는데, 그 세계관과 의식구조는 곧 그 사람의 ‘말’ 즉 메시지를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유대인 고전 <탈무드>를 보면 랍비가 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찾아 상자에 담아오라”라고 시키자, 제자는 두 상자에 모두 혀를 담아 가져왔다고 한다. 혀가 나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고, 좋게 쓰이면 사람을 살리기까지 하므로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므로, 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많은 상처를 주어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장(老莊)사상에 심취했던 당나라 현종이 ‘노자’텍스트에 ‘경’자를 붙여서 『도덕경』으로 올렸다는 제왕학의 전범인 도덕경에서 왕은 의중을 확실하게 노출하지 말고 그저 조짐(兆朕)만 보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왕이 자신을 지칭할 때 짐(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노자는 다언삭궁(多言數窮) 불여수중(不如守中) 즉 “말이 많으면 자주 처지가 궁색해지니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
“저 우주와 자연은 자신의 의도를 말로 하지 않는다, 그저 만물을 풀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않는다. 지도자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저 백성들을 풀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말라”(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도덕경』5장
국정 최고 지도자는 윤언여한(綸言如汗), 즉 말을 땀처럼 여겨야 한다. 일단 흘린 땀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한번 내린 결정은 취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철의 여인’ 영국 대처 총리는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을 형성하며, 인격은 운명을 좌우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후당(後唐) 시절 입신해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는 처세에 능해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 즉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 풍도는 자신의 처세관(處世觀)을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 요약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뜻이다.
야무유현(野無遺賢), 현자가 들판을 헤매지 않으면, 만천하가 편안하다.
“동양의 정치는 야무유현(野無遺賢)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경륜 있는 자는 스스로 감추지만 현명한 치자(治者)는 그를 찾아내야 하고, 끝내 찾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하고 경륜 있는 사람을 초야에 묻혀 썩게 하고 아첨하는 소인배(小人輩)만을 등용하는 치자는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청록파 시인이자 자유당 시절 논객이었던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전 고려대 교수의 ‘의기론(意氣論)’의 한 구절이다. 나라의 치세가 바르게 되려면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야무유현’은『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현명한 사람을 모두 발탁해서 초야(민간)에 인물이 없다’라는 뜻이다. 어진 이가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산다는 것은 세상이 어지럽고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요약하면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위선은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전문성과 역량이 결여된 아마추어 ‘김현미 장관 류’의 기용, 재판 결과 ‘위선자의 표본’으로 확인된 조국 장관 등의 발탁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였다. 소주성, 부동산 파동, 국가부채 1000조에 이른 미증유의 경제난과 치솟는 고물가의 민생고 등으로 국민이 겪었던 대가가 너무 컸다. 혼란이 극에 다다르면 새로운 질서가 온다는 난극당치(亂極當治)라고나 할까, 문 정권의 실정에서 빚어진 나쁜 결과 뒤처리가 인사의 정상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인사가 망사’가 된 문 정권에 실망하고 정권교체를 했는데 윤 정권도 ‘며느리가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간다’라는 속담처럼 초장부터 인사에 구설이 따르고 있다. ‘남성·50대·서울대’ 편중에다 오랜 지기를 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자진 사퇴했고, 검찰 시절 복심(腹心)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가 ‘남성 편중 인사’를 지적하자 두 여성 장관 후보자를 전격 지명했지만 두 사람은 제기된 의혹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인사 참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5월 첫째 주 조사 이후 한 달여 만에 다시 40%대로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6월 17일 나왔다. 직무수행 부정평가자들은 인사(21%) 직무 태도(11%), 대통령 집무실 이전(9%) 등을 꼽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김건희 여사 행보(1%)가 부정평가 이유에 새롭게 등장했다. 최근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김종인 전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출범한 지 한 달 20일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런 사태가 났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수습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2022.6.30.)
정부 출범 초 검찰 출신이 법무부와 검찰 내부 인선을 넘어 대통령실과 금융감독원·국가정보원 등 국정 운영 핵심 각종 요직에 '윤석열 사단'인 측근 검사 출신들이 대거 기용됐다. 헌법의 기본 정신인 견제와 균형 원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검찰 내부에서도 편중 인사가 '검찰 공화국' 이미지 각인으로 검찰 조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또한 ‘끼리끼리 인사’인 동종 교배식 검찰 인사는 전문성과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요 언론사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입을 모아 '검찰 공화국'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권영세(통일부 장관), 원희룡(국토부 장관), 박민식(국가보훈처장)같이 벌써 검사 그만둔 지 20년이 다 되고 국회의원 3선, 4선하고 도지사까지 하신 분들을 무슨 검사 출신이라고 얘기하는 건 좀 어폐가 있지 않나”라고 항변했다. 국정 지지도 폭락 이유로 “윤 대통령 인사가 문제”라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예견되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정관정요, “다른 왕조에 가서 인재를 빌려다 썼단 말이냐?”
중국 역사상 ‘정관의 치’로 알려진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모범적 치세를 보였던 이세민(李世民)이 신하들과 나눈 문답집이자 제왕학 교과서인『정관정요(貞觀政要)』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인사(人事)를 가장 중시했다. 이세민은 대신 봉덕이(封德彛)에게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일을 맡겼는데, 봉덕이는 시간이 흘러도 인재를 추천하지 않고 차일피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태종이 진행 상황을 채근하자 “제가 성심을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태종은 “군자가 사람을 쓰는 일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아 각자의 장점을 취해야 한다. 자고로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 제왕들은 다른 왕조에 가서 인재를 빌려다 썼단 말이냐? 인재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걱정해야지, 어찌 오늘의 인재들을 모함하느냐”고 강하게 질책했다.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재(適材)가 적소(適所)에 배치돼야 한다는 점이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큰 나무는 대들보와 기둥으로 쓰고 작은 것은 서까래로 쓰고, 눕힐 것과 세울 것을 각각 그 자리에 알맞게 써야 크고 튼튼한 집이 된다는 원리와 똑같다. 적재적소에 배치되면 모든 결정에서 문제점에 대해서 '왜'를 묻고 '어떻게'를 빨리 찾는다. 여기서 효율이 생기고 속도가 빨라진다. 비선조직이 힘을 쓸 방법이 줄어들고 없어진다.
취임 50일이 지났건만 국가 경영에 대한 포괄적인 프로그램이나 시대정신을 담은 눈에 띄는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콘셉트로 국정을 차별화하고 국정 어젠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지, ‘윤석열표 브랜드’가 아리송하다. “대통령 권력은 유한하고, 책임은 무한하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시경(詩經)』에 '두려워하고 삼가기를, 깊은 못가에 서 있듯, 얇은 얼음을 밟고 가듯(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논어(論語)』, 태백)” 신중하게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인과 함께 한가하게 쇼핑하고 여유 부릴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위기상황이다. 거대 야당의 압박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물가, 무역적자 역대 최악 등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총체적 위기)’이 이미 시작됐을지 모른다”는(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복합적 경제위기, 북핵 고도화 등 난마처럼 얽힌 국제정세 등 내우외환(內憂外患)은 시시각각 윤 정권을 옥죄어오고 있다. “때를 얻는 자 흥하고 때를 놓치는 자는 망한다”는 말대로 전광석화처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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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통령 자신이 망한 문정권 인사 중 핵심 아니던가요? 전 정권 인사 중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있었냐는 질문이 자기자신에 대한 극심한 격하로 돌아오는걸 모르나봐요?